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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총선과 유럽의회 선거앞둔 스웨덴 ‘여성주의 정당’ 
  

글쓴이 박강성주: 뜻하지 않은 기회에 스웨덴에 오게 되었고, 지금은 그 ‘우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앎의 불완전함과 삶의 통제 불가능성을 얘기하는 작가 헤닝 만켈을 좋아합니다. www.ildaro.com  

 

“스웨덴이 아주 평등한 사회라고 하는데요, 저는 놀랍니다. 인종주의자는 의회에 진출시켜도 여성주의자는 안 그렇잖아요!” (<스웨덴 공영텔레비전> “나의 진실” 2012년 9월 25일)

 

스웨덴 여성주의 정당(Feministiskt initiativ, F!)의 대표적 인물인 구드룬 휘만(Gudrun Schyman)이 한 말이다. 2014년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는 스웨덴에서 이 짧은 한 마디는 쉽게 지나칠 수 없을 듯하다. 2010년 총선에서 인종차별주의와 극우정치에 바탕을 둔 스웨덴민주당은 의석을 얻었지만, 여성주의 정당은 중앙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올해 선거는 어떨까.

 

‘슈퍼선거의 해’ 인터넷 지지도 “1위” 


▲ 여성주의 정당의 2014년 중앙의회 선거 1 - 5순위 후보자들  © F! 홈페이지 www.feministisktinitiativ.se 
 

스웨덴에서 2014년은 ‘슈퍼선거의 해’라고 불린다. 사상 처음으로 스웨덴 총선(9월 14일)과 유럽의회 선거(5월 25일)가 같은 해에 치러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초 여성주의 정당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1위.” 바로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조사에서 여성주의 정당이 최대의 정당으로 기록된 것이다. 시사잡지 <포쿠스>에 따르면, 2014년 2월 기준으로 여성주의 정당 페이스북 지지자는 1만2천518명이었는데, 이는 2위를 차지한 사회민주당 8천781명을 크게 앞선 수치였다.(참고로 3위는 6천787명의 녹색당이 차지했고,  현 정부를 이끌고 있는 중도당은 2천216명으로 6위를 기록했다.)

 

물론 인터넷에서의 지지, 또는 여론 조사에서의 지지가 실제 선거에서 그대로 반영되리라는 법은 없다. 2010년 당시에도 여성주의 정당은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 선거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의회 진출의 조건인 4%에 크게 못 미치는 0.4%라는 실망스러운 득표율을 기록했다.(2006년 총선의 경우 0.68%.) 올해 여성주의 정당은 과연 의석을 얻을 수 있을까.

 

“녹색당이 처음 의회에 진출했을 때 당원수가 5천명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 여성주의 정당은 7천명이랍니다!”(스웨덴에서 녹색당이 처음으로 의석을 얻은 때는 1988년으로, 득표율은 5.53%였다.)

 

얼마 전 조심스럽게 선거의 예상 결과를 물어보자, 이 정당의 한 열성 지지자는 이렇게 답변했다. 늘어나는 당원수를 자축하기 위한 모임에서, 중앙의회와 지역의회 후보이기도 한 그녀는 확신에 차 있었다. 실제로 몇 가지 긍정적인 상황이 보인다.

 

무엇보다 여성주의 정당에 대한 인지도와 지지가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 1월 <스웨덴 공영텔레비전>은 여성주의 관련 3부작 프로그램 “Fittstim – 나의 투쟁”을 방영했다. 언론인 벨린다 올손이 현재 스웨덴에서 여성주의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살펴보는 방송이었는데,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1부에서 올손이 “스웨덴 여성주의의 여왕”으로 소개하며 찾아간 인물이 바로 구드룬 휘만이다. 방송 이후 며칠 만에 1천575명이 여성주의 정당의 당원으로 등록했다. 평소 하루 10-15명 당원이 늘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증가다.

 

또, 여성주의 정당은 65명의 예술인들이 함께 만든 선거 관련 주제곡들을 5월에 선보였다. 스웨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 로빈(Robyn)이 함께하고 있다. 예술인들의 움직임은 다른 정당과 비교했을 때 매우 적극적이라 할 수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메트로> 2014년 4월 8일), 사회민주당과 좌파당의 경우 몇몇 예술인들과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를 비밀에 부친다. 중도당의 경우, 예술인 참여 여부 자체를 정확히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중도당과 함께 현 정부를 이끌고 있는 다른 정당들은 그런 계획 자체가 없다고 한다.

 

이와는 별개로, 유명한 스웨덴 그룹 ‘아바’(ABBA)의 구성원 베니 안데숀은 지난 2010년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적지 않은 후원금을 여성주의 정당에 보탰다.(10만 크로나, 약 1천 5백만원.)

 

여성주의 정당, 의회에 진출할 수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의회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여성주의 정당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움직이고 있다. 이는 작년 당대회에서 구드룬 휘만이 당 대변인(대표) 세 명 중 한 명으로 다시 돌아오면서부터 예견됐다.

 

휘만은 2010년 선거에서 여성주의 정당을 중앙의회로 이끄는 데는 실패했지만, 스웨덴 남부에 있는 자신의 지역구(Simrishamn)에서 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지역의회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는데, 2011년 9월 필자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제가 처음 당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대변인을 맡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새로운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했고, 이 부분이 대변인 체제에도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아울러, 정말 말하기 슬픈 일인데요, 저와 같이 대변인을 맡았던 동료(스티나 순드베리)가 병으로 인해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죠.”

 

그렇게 물러났던 휘만은, 이번 총선에서 정당의 중앙의회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2013년 대변인으로 돌아왔다. 스웨덴의 주요 언론들은 이 소식을 비교적 비중있게 다루었다.

 

휘만은 ‘홈파티’라고 불리는 모임을 꾸준히 열고 있는데, 여성주의 사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풀뿌리 운동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이 행사를 통해 여성주의 정당의 지지 기반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도 홈파티가 열렸는데, 광고가 나간 지 몇 시간 만에 90석의 자리 중 80석이 예약되었다. 


▲ 여성주의 정당의 풀뿌리 활동 중 하나인 '홈파티'의 한 장면.   © 출처: 구드룬 휘만 홈페이지  

 

여성주의 정당이 이번 선거에서 의회에 진출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2010년 총선 때보다 높은 득표율을 얻지 않을까 기대된다. 최소한 지역의회에서는 휘만의 지역구를 포함해 1곳 이상에서 의석이 확보될 듯싶다. 휘만은 2011년 9월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제 지역구가 성평등 의식과 관련해 특별한 곳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뭔가 있다면, 바로 여성주의 정당이 지역의회에 진출했다는 것이지요. 이유는, 우리가 선거운동을 굉장히 활발히 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정치를 더욱 진척시켰고 논의의 장을 열게 된 것이죠.”

 

‘인종주의’와 ‘파시즘’ 정치 세력을 견제하겠다

 

선거 홍보자료에 따르면, 이 정당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유럽 전역에서 힘을 얻어가고 있는 인종주의, 파시즘 정당들에 대한 견제다.(스웨덴의 경우 스웨덴민주당을 비롯해 스웨덴당, 그리고 스웨덴저항운동 같은 극우세력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이들 정치 세력은 여성주의 정당이 핵심 가치로 내걸고 있는 ‘평등’과 모든 차별로부터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에 대한 억압”이 다른 (후진) 국가들에만 존재한다는 극우 세력들의 주장을 강력히 비판한다. 한 마디로 스웨덴과 북유럽이 “평등의 천국”이라는 말은 허구라는 것이다. 아울러 당은 ‘더욱 열린 유럽’을 추구하며, 이른바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유연하고 관대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제 한 달 채 남지 않은 유럽의회 선거는 그 결과가 주목된다. 2010년 총선에서는 여성주의 정당을 직간접적으로 지지하던 이들 사이에서 중도당이 이끄는 보수연합 정부의 연승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보수연합과 이에 대항하던 ‘적녹연합’ 세력의 여론조사 격차가 크지 않았기에, 지지자들 사이에는 정권 교체를 위해 ‘적녹연합’에 표를 몰아주자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반면 지금은 그때에 비해 어느 정도 유리한 정치적 지형이 만들어져있다. 역사상 최저 지지율을 보이며 위기에 빠져있던 사회민주당이 지지율을 점점 회복했고, 적어도 여론 조사 결과로 본다면 이번 총선에서 보수연합을 이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사회민주당이 이끌고 있는 정치세력과 보수연합의 격차는 작년 가을 기점으로 꾸준히 10%대 안팎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주의 정당이 표를 얻기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역시나 ‘사표’ 논쟁 때문이다. 정권 교체를 노리고 있는 사회민주당 계열의 한 남성 논객이 여성주의 정당에 가는 표는 현 보수 정권에게 도움이 될 뿐이라며 ‘전략적 투표’를 제안한 것이다. 스웨덴 유권자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스웨덴 사회의 응답은? 


▲  여성주의 정당의 지지 기반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것을 축하하는 모임에 등장한 케잌   © F! 지역당 위원장
 

4월 14일에 알려진 여론조사 전문기관 <유거브>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주의 정당은 예상득표율 2%를 기록했다. 지난 총선의 0.4%에 비해 “굉장한 증가”로 평가된다. 또 원외정당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치이지만, 의석 확보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또 다른 기관인 <시포>의 결과는 1.3%.)

 

높아지는 인지도와 활발한 활동력, 그리고 변화된 정치지형을 생각했을 때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그러나 총선까지는 아직 5개월이 남아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 아울러 ‘중앙의회’ 진입에 실패한다는 것이 곧 정당 활동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내년은 여성주의 정당이 10주년을 맞게 된다. 때문에 올해 2014년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이 될 듯싶다. 민주주의 모범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 스웨덴. 이번 총선에서 여성주의 정당의 호소에 어떻게 응답할지 몹시 궁금하다.

 

“인종주의자들을 내보내고, 여성주의자들을 들여보내요!”(Ut med rasisterna, in med feministerna!)  ▣ 박강성주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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