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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잠 못 이루는 노인들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연재 ‘죽음연습’.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www.ildaro.com

 

헤르만 헤세가 남긴 노년과 죽음에 대한 사색들을 뒤쫓다가 나는 “통증이 풀 속의 꽃들처럼 무성하게 자라나는 밤을 지새우기도 몹시 고역스럽다”라는 구절에서 잠시 멈추었다. ‘통증이 풀꽃처럼 무성하게 자라는 밤’이라…. 불면의 밤에 겪는, 몸의 진저리나는 고통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해서 마음이 끌렸나 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노년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40대에 불과하지만, 통증으로 지새우는 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다. 이미 내 몸은 세상이 인정하건 하지 않건 젊음을 뒤로 하고 노년으로 접어든 느낌이다. 늙는다는 것은 평균적인 수치나 세상의 공인과 별도로, 개인의 몸과 마음에 따른 나름의 리듬과 속도가 있는 법이다.

 

노인들이 잠을 좋아한다?

 

몸이 늙어 가면 이른 새벽 불쑥 찾아드는 통증이라는 불청객을 맞느라 잠을 깨는 횟수도 잦아진다고 한다. 통증만이 아니라 여러 다른 이유로 수면의 질은 나이와 비례해서 나빠진다는 소식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잠의 주기도 변화하고, 나쁜 수면 습관에 젖어 있거나 건강 상태에 따라 또는 복용하는 약들로 인해 숙면을 취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여든을 앞 둔 외삼촌을 뵈러갔을 때였다. 수년 만에 나를 만나 무척이나 반가워하셨지만,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잠으로 빠져들어가셨다. 꼬박꼬박 졸고 있는 외삼촌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참 많이 늙으셨네’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폴 마틴의 <달콤한 잠의 유혹>(베텔스만, 2003)을 펼치면, 노인들이 왜 수시로 잠에 빠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늙어가면서 잠도 줄지만 렘수면이나 깊은 수면인 서파수면도 줄어든다고 한다. 대신, 수면 대부분이 얕은 수면인 비-렘수면으로 채워진다고 한다. 젊은이의 경우 잠의 20-25%가 서파수면에 해당하지만, 중년이 되면 서파수면이 5%로 떨어지고, 노년에는 서파수면이 현저히 줄어든다.

 

노인의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살펴보면, ‘만성적인 고통, 자는 동안 소변을 보고 싶은 욕구, 수면 관련 호흡 장애, 소리에 예민해지는 경향’ 등이 있다. 노인들은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잠을 한 번에 이어서 푹 자지 못하고 밤에 수시로 깨어날 뿐만 아니라, 밤에 깨어 있는 시간도 많다. 그렇다 보니 숙면을 취하지 못해 잠이 항상 부족하다.

 

결국 노인이 되면 잠이 좋아져서 잠에 취해 지내는 것이 아니라 밤새 제대로 자지 못하니까 낮잠과 졸음을 동원해서라도 부족한 잠을 보충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노인의 잠에 대한 진실이다.

 

밤마다 소주잔을 기울였던 할머니

 

중년을 지나 폐경기에 이르면서 불면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늘어난다. 사람에 따른 차이를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여성이라면 생리주기에 따라 수면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생리 직전에는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생리 직후에 잘 잔다고 한다. 나만 해도 중년이 되면서 생리 직전 하루나 이틀 정도 깊은 잠에 들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이 때는 밤사이 수없이 뒤척이면서 깨고 자기를 반복하면서 꿈에서 꿈으로 헤매고 다닌다.

 

나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건강한 여성들, 특히 중년과 노년의 여성들이 불면으로 힘들어한다니까 놀랍다. “50세 이상의 여성은 같은 나이의 남성보다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길고 밤에도 깨는 횟수가 더 많으며 깨어 있는 시간도 더 긴 데다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솔깃하다.

 

불현듯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도 다른 여성 노인들처럼 폐경기를 지나면서 불면에 시달리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실제로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 한 해 동안 심각한 불면에 시달리셨던 것 같다. 큰 아들을 잃은 상실감이 할머니를 끝없는 슬픔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늦은 밤, 내가 방문을 열어볼 때마다 할머니는 사진첩을 뒤적이며 울고 계셨다. 그 때의 수척한 할머니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날이 수척해지신 까닭도 매일 밤 아들 생각으로 잠들지 못해 뒤척이며 불면의 밤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시간들, 잠 못 이루던 밤에 할머니는 술을 벗 삼아 슬픔을 속이고 술에 의지해 잠을 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불면이 마지막 한 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더 오래된 불면의 개인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 방 화장대 곁에는 항상 소주병과 소주잔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소주잔을 홀로 기울이곤 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가위에 눌리거나 악몽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깬 한밤중이면 난 할머니 방문을 살며시 밀고 들어갔다. 내 발걸음에 잠이 깬 할머니는 졸린 눈을 부비며 나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방 안에서는 정규방송이 끝난 시간, 텔레비전이 혼자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고, 머리맡에는 마시다 만 소주병과 빈 잔이 있었다.

 

할머니는 술의 힘을 빌려 잠을 청하셨던 것 같다. 밤 9시면 잠자리에 들고 이른 새벽부터 몸을 놀리는 부지런한 할머니가 술에 의지해서 잠을 청해야 할 정도로 잠들기가 어려울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냥 술을 좋아하시나 보다 생각했다.

 

남성은 신체적 건강의 문제로 수면 장애를 앓는 반면, 여성은 우울증으로 불면에 시달린다고 했다. 할머니는 술에 기대지 않고서는 불면을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고독하고 우울하셨던 것일까? 당시 중고등학생이었던 내가 60대 후반, 70대 초반이었던 할머니를 이해하기에는 어리고 이기적이었다. 태어난 일본 땅을 떠나 타국살이를 해야 했던 할머니가 외로울 수도 있고, 고향이 그리울 수도 있고, 외국생활이 힘들어서 서글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왜 못해 본 것일까? 사실 할머니의 감정 따윈 큰 관심이 없었다.

 

주변의 관심이 소홀한 틈에 할머니는 불면의 처방으로 술을 택한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술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잠드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지만, 렘수면을 방해해서 깊은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이 또 다른 진실이다. 게다가 상습적으로 술을 마셔 잠을 청한다면 점점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셔야 하니까 오히려 불면을 부채질할 뿐이란다. 도대체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매일 밤 얼마나 마셨던 것일까? 홀로 겪어내야 했던 불면의 밤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영원한 곳을 향해 여행을 가라고”

 

76세의 헤르만 헤세도 불면의 고통을 고백한다. “질병과 결함, 흐릿해지는 사고력, 굳어가는 육신, 많은 고통, 더구나 그런 모든 것들을 길고, 지루한 밤에 겪어야 한다는 것- 모두가 숨길 수 없는 씁쓸한 현실이다.”

 

노년이 안겨준 불면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고령의 헤세는 불면의 희생양으로 머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잠을 잃은 노년의 밤 덕분에 늙음과 죽음을 성찰하고 글과 시를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옛날 천 년 전에”란 제목의 시야말로 그런 결실로 보인다. 밤 귀가 밝아 잠 못 이루는 밤, 단잠을 깨우는 소리를 헤세는 ‘영원한 곳을 향한 여행을 준비하라는 다그침’으로 듣는다.

 

  “뒤숭숭하고 어수선하게 토막 난 꿈에서 깨어나

   한밤중에 대나무가

   자기네들끼리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가만히 쉬게 두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게 두지 않고

   그것이 나를 마구 뒤흔든다.

   영원한 곳을 향해 여행을 가라고,

   뛰쳐나가라고. 날아가라고.”

 

나이가 더 들어 내게도 지루하고 힘겨운 불면의 시간이 도래한다면, 할머니처럼 마지막 밤 시간들을 인생의 슬픔을 게워내는 데 바치고 싶지 않다. 진정으로 늙음과 죽음에 대해 사색하는 여유로움을 갖고 싶다. 잠이 내게서 멀리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영원한 잠, 죽음의 시간이 가까이 다가옴을 깨닫고 죽음을 차분히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불면을 마냥 성가시고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으로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다. ▣ 이경신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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