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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이 계속되는 이유
 
<베트남 여성 L씨는 결혼 후 6개월간 네 차례에 걸쳐 남편에게 구타를 당했다. 처음에는 한국어를 제대로 못해 남편을 답답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폭행 후 남편은 L씨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길에 혼자 버려두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두려움에 떨던 L씨는 주위를 지나는 한국인들에게 가까스로 도움을 얻어 중개업체에 연락했다. 남편이 다시 L씨를 데려갔지만 폭력은 계속되었다. L씨는 집에 손님이 온 틈을 타서 도망쳐 경찰과 1366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상담사례 중 하나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의 전체상담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이주여성들이 겪고 있는 ‘가정폭력’으로, 월평균 35%에 이른다. 결혼이주여성들에게 가해지는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수년간 꾸준히 문제제기 되고 있지만, 현실은 그다지 변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신분이 ‘남편’에게 달려있어 가정폭력에 방치돼

 
권미주(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담팀장)씨는 11월 28일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주최로 열린 가정폭력추방정책 토론회에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서 L씨의 경우처럼 남편이 악의적으로 아내를 유기하거나, 생활비를 주지 않고, 거의 감금상태에 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무형적 폭력 문제 또한 심각하다고 보고했다.
 
결혼이주여성들에 대한 가정폭력이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는 이유로 제시되는 것은 “언어장벽”과 “불안정한 체류자격”의 문제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결혼이주여성들이 겪고 있는 가정폭력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가정폭력은 일반적으로 가정 내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특히 이주여성의 경우는 한국의 법과 언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기 더욱 더 어렵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결혼이주여성의 ‘불안정한 신분’ 탓이다. 국적취득 이전의 결혼이주여성들의 신분은 전적으로 ‘남편’에게 달려있다. 국적취득을 신청할 때도 남편이 보증을 서주어야 가능하며, 일년마다 갱신하도록 되어 있는 비자(visa, 사증)의 신청권 역시 남편에게 있다.
 
국적취득 전에 이혼을 하게 되면 이주여성은 체류자격을 박탈당하고 만다. 가정폭력을 피해서 쉼터로 피신한 경우에도, 한국인 배우자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출신고를 하면 “신원보증철회 신청”으로 접수되어 결혼이주여성의 비자는 더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즉, “불법체류” 상태가 된다.
 
더구나 이러한 절차진행과정 역시 결혼이주여성의 주소지인 ‘남편의 주소지’로 통보되므로, 가정폭력 피해를 겪는 이주여성은 이의를 제기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행 국적법은 결혼이주여성의 보호를 위해, 가정폭력 피해를 입증하는 경우에 한해 귀화신청 자격을 부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정폭력 입증과정이 어렵고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이주여성은 ‘강제퇴거’ 위험에 노출된다.
 
가정폭력방지법에 ‘이주여성 특례조항’ 도입주장

소라미 변호사(공익변호사그룹 공감)는 이와 같은 “법 제도간 모순”을 지적하며, 가정폭력 피해를 겪는 결혼이주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이주여성 특례조항을 도입하여, 가정폭력에 관련된 법적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강제퇴거를 유예한다는 것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물리적 폭력만이 아닌 경제적 학대, 유기 등의 무형적 가정폭력에 대한 지원책 마련도 시급하다는 것이 이주여성 인권문제를 고민하는 연구자 및 활동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재로서 가정폭력을 귀책사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상습적이고 심각한 수준의 ‘물리적 폭력’이 입증되어야만 한다.
 
소라미 변호사는 “원치 않는 이혼 강요, 낙태 강요, 악의적 유기, 인격적 모독, 감금, 경제적 학대, 성적 학대 등 무형적 폭력”에 대해서도 “일정기간 체류보장 및 경제활동 가능한 체류자격 부여, 법률지원, 사회보장 혜택 등을 부여한다는 것을 명문화”할 것을 요청했다.  [일다] 박희정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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