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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나는 초과근무 시급을 받을 수 있을까?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www.ildaro.com 


중소기업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한 지 1년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기분이 가라앉은 탓인지, 매끄럽게 움직이는 회색 계단들의 이미지가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다. 연장근무를 2일 째 하고 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우울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중소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정식 인턴이라기보다는 경력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 정도다. 시급제로 받고 있고, 주 3일 근무를 하고 있으며,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게 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대표님도, 직원들도 전부 젊고 여성직원 비율이 더 높아서인지 술을 강요하는 회식문화나 성희롱 따위의 사건들도 전혀 없다. 아니, 사실은 반복적인 업무로 지칠 때 그나마 회사 직원들과의 관계로 위안을 얻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우리는 민주적이고 따뜻하며, ‘팀장님’ ‘대리님’ 등의 직급으로 서로를 칭하면서도 그 이상의 인간적인 돈독함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는 계속 우울하다.


시작은 항상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다. “왜 여기 앉아 계세요?” “아, **씨 자리 옮겼어요. 제가 이쪽 팀이랑 같이 기획하기로 한 일이 있어서…” 그렇구나, 하며 아무렇지 않게 옮겨져 있는 내 자리로 갔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나는 내 의자를 내주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고, 오늘처럼 정직원들의 업무에 맞춰 자리를 가끔 옮겼으며, 가장 ‘막내’기 때문에 아침에 와서 원두커피를 내려야 했고, 밥을 먹으러 나가면 수저와 물컵 등을 세팅해야 했다.


사실 우리 회사가 그렇게 고압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아마 내 의자로 부족했다면 다른 (어린) 사원의 의자를 가져갔을 것이고, 커피도 나를 포함한 신입사원들끼리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준비하는 등 나름대로 ‘민주적’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사회생활’이다. 특별하게 잘못되었거나 불만을 가질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고 어렴풋이 이해는 하면서도 이렇게 가장 ‘건드리기 쉬운’ 위치에 있음을 느끼게 하는 소소한 일들을 접할 때마다 살짝 씁쓸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다.

 

▲  한 구인구직 사이트의 인턴/ 아르바이트 채용 공고.  청년들의 일자리는 임시직, 비정규직이 주를 이룬다.   © 일다


자리에 앉자 옆에 계신 부장님이 말을 건넨다. “**씨. 내가 업무 메일 보낸 것 봤어? 이번 주까지 꼭 끝내야 하는 일이 생겼어. 확인해 봐.” 메일을 확인해보니 단순 노동이라 귀찮아서 그렇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양이 엄청나게 많았을 뿐. 양이 워낙 많아 다른 팀들과도 나누어서 한다고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늘 해오던 업무들을 먼저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부장님이 “지금부터 하지 않으면 이번 주 내로 못 끝낼 거야”라며 걱정 어린 말을 건넨다. 그러나 나는 오늘 안에 꼭 처리해야 하는 다른 일들도 있다. 물론 나만 다른 일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부장님께 나는 일주일에 3일만 나오는데 이 일을 다 할 수 있을지 물어봤다. 부장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근데 다음 주에도 일이 많을 거야. 그래서 **씨를 야근을 시키거나 주4일을 나오게 하라고 대표님이 말씀하시더라. 아마 **씨한테 직접 말씀하실 거야. 내일 쯤 얘기하신대.” 나는 약간 기분이 상했다. 왜 내가 당연히 야근을 할 수 있거나 휴무일에도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일이 그렇게 많다면 빨리 이야기해서 언제까지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내일 이야기한다는 거지?


물론 이런 생각들을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어쨌든 나와 이야기하기로 하셨다고 하니 기다리기로 한다. 그리고 오늘만은 뺄 수 없는 약속이 있다며 부장님께 양해를 구하고(사실 이것도 좀 이상하다. 나는 정시 퇴근을 할 뿐인데.) 저녁 7시에 사무실을 나섰다.


‘어차피 시급으로 받는 거니까…’


다음 날, 일을 하고 있는데 대표님이 나와 부장님을 같이 부르셨다. 대표님이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어차피 시급으로 받는 거니까… (조금 남아서) 일 처리 해주고, 일이 너무 많으면 주4일 정도로 늘리는 건 어떨까?” 대표님은 부드러운 리더를 자처하는 온화한 분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 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간 생각들. 저는 이 회사에 나오기 위해 항상 대기 중인 사람이 아닌데요. 그렇지만 말하지 못한다. 사람 좋게 웃는 얼굴에 감히 이의 제기를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대표님과 단 둘만이었다면 모를까, 부장님도 같이 계시는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이번 주는 야근을 하기로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을 끝내기로 했다. 그리고 당장 지금부터 평소보다 더 늦은 퇴근을 해야 한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뭔가 억울하다. 나는 지금 내가 연장 근무를 하는 것에 대해 초과수당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게 따지지 못한 상태다. 무엇보다 나에게 일을 지시하는 그 태도가 나를 우울하게 했다.


예전에 카페에서 일을 할 때가 생각났다.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사정이 생기면 우리는 돌아가면서 대타를 해 주었다. 그 때 점장님은 우리에게 ‘나올 수 있냐’고 물어봐 주었다. 나는 별 일이 없으면 항상 대타를 뛰었는데 그것이 특별히 싫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적어도 점장님이 내게 양해를 구하고, 내가 선택하는 절차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대표님은 이미 내 야근을 전제하는 상태에서 어디까지나 지시를 내렸을 뿐이다.


나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이다. 근로계약서를 쓰지는 못했지만(사실 이것도 문제가 있는 지점이다.) 주 3일, 10시부터 7시까지 근무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렇지만 회사 일이 급해지면 나는 상시 대기 중인 노동력이 되는 모양이다. 회사 사람들 모두가 나눠서 하고 있으니까, 정직원들도 야근할 예정이니까 너도 해야지, 식이다.


야근은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내 위치가 헷갈릴 뿐이다. ‘어차피 시급으로 받으니까…’ 어차피 시급으로 받으니까, 내가 연장 근무하는만큼 돈은 받을테니 더 일하다 가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었다. (심지어 초과 급여는 논의되지도 않았다.) 나는 인턴과 아르바이트의 경계에 있었다. 나는 부수적인 노동력인 동시에 커피를 준비하는 ‘명예 막내사원’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보아도 우리 회사는 종종 매스컴에 나오는 기업들에 비하면 천국이다. 나서서 내 시급 인상을 제안해주는 직원은 없어도 내가 ‘받을 것은 받게’ 챙겨주는 직원들이 있다. 내가 수저를 놓을 때 옆에서 물컵을 세팅해주는 직원들이 있다. 내가 야근하는 것을 보고 ‘(파트타임인데) 고생한다’고 격려해주는 직원들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우울하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역시 회사 생활은 나와 맞지 않는 걸까? 차라리 편한 사무직은 아니더라도, 혹은 돈이 좀 덜 되더라도 수직적 위계가 없는 다른 아르바이트가 나을까?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다른 노동 경험들을 떠올려 본다.


‘오빠’들 사이에서 일한 독서실 알바의 경험


생각해보면 근본적으로 ‘위계가 없는 노동’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인이라는 관계망은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피고용인 간의 위계는 없을 수 있지 않나? 회사는 모든 직원들이 수직적 구조에 따라 편성되어 있지만 예전에 일했던 카페나 독서실, 아이스크림 전문점 등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은 다 똑같은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문득 깨닫는다. 아! 다 똑같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니었다.


재작년 초, 나는 독서실에서 총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급여는 많지 않지만 그만큼 일도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독서실의 좋은 자리를 공짜로 얻을 수 있었다. 매니저님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마음이 편한 게 낫다는 분이셔서 까다로운 환불 요청도 다 처리해주는 호인이었고, 아르바이트생들이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많이 도움을 주셨다. 매니저님은 얼굴을 볼 일이 많지 않았으니 정말 ‘아르바이트생들의 세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안에서도 을이었다.


인수인계도 끝나고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질 무렵, 야간 근무를 하는 ‘오빠’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업무를 조금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당시 나는 오전 근무를 하고 있었고, 주간-야간은 ‘오빠’ 두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둘다 나보다 두 세 살 정도 많았으며 보통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독서실에서 많이 일하다보니 내 나이는 굉장히 어린 편이었다. ‘오빠’는 나에게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매니저님은 사실 총무 세 명(오전-주간-야간)을 전부 남자로 뽑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한 명은 여자가 있어야 독서실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아서 오전 타임은 여자를 뽑고 있다. 그러니까 네가 (여자로서) 챙겨야 하는 일들이 있다. 본인들은 독서실을 돌아다니면서 전구를 갈고, 의자를 체크하는 등 ‘남자가 할 일’을 할 테니 너는 사무실 정돈을 잘 하고, 고객들한테 좀 더 상냥하게 대했으면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중에는 이 전구를 갈고 시설물을 체크하는 것이 남자가 하는 일이라고 믿었던 ‘오빠들’이 전부 게을러져서(혹은 바빠져서?) 전구 가는 일도 내가 하러 다녔다. 그래, 뭐 사실 전구를 가는 일과 사무실을 정리하는 것 중 뭐가 더 ‘시다 짓’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기분 나빴던 것은 성별 역할 분담이었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에 왜 굳이 ‘여자’라는 것을 들먹이며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걸까? 자기 딴에는 배려라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그 성별에 대한 고정 관념은 사적인 관계에서도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그 ‘오빠들’과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거나 수다를 떨 일이 있을 때, 둘 중 한 명이 음담패설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면 그걸 가지고 또 굉장히 재미있어 했다. 나는 그들과 같이 근무하고 있는 ‘오전 타임 알바’이기 이전에 ‘어린 여자’였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놀리기 쉬운 존재가 되거나 보호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나는 고용주-피고용인의 관계에서만 을이 아닌 것 같다. 을과 을 사이에서도 더 아래에 있는 을인 것 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신입사원들과 돌아가며 커피를 끓이고, 당연하게 야근을 지시 받더라도 남자 직원들에게 ‘오빠’라고 부를 필요 없는 회사가 더 낫겠다.


그래도 역시 야근을 할 때 평상시 시급을 받고 싶지 않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나는 ‘초과급여’에 대한 법정 기준을 찾아본다. 나는 내 시급의 1.5배를 받을 수 있다! 잠깐 기쁘다. 그렇지만 다시 걱정이 된다. 대표님께 시급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하나? ▣ 잠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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