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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서울DPI에서 진행하는 하계 엠티를 다녀왔다. 엠티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실상은 여름에 갈 곳 없이 죽어라 일만 하는 청춘들을 위해 무박으로 밤바다 구경이나 하자는 것이었다.
 
장소는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 기분 좋은 시간을 갖기 위해 갔던 그곳에서 모욕적인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 올해부터 실행되고 있지만, 실제로 장애인에 대해 우리 사회의 태도가 어떤지 그 현주소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굳게 잠긴 장애인여자화장실,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우리가 엠티 장소로 선정한 그곳의 공중화장실에는 반갑게도 장애인화장실이 남녀 따로 마련돼 있었다. 일행 중 일반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휠체어이용자가 5명이나 되는 우리로선 너무나 반갑고 기쁜 일이었다. 우린 화장실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근처 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회식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잠시 화장실을 이용하려던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게도 남녀 구분까지 해놓은 장애인화장실이 막상 사용하려고 하니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던 것이다.
 

을왕리 해수욕장의 장애인화장실은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근처에 있던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화장실이 자신의 소관이 아닌 을왕리 부녀회가 관리하고 있으며, 열쇠는 담당자가 퇴근할 때 들고 가버려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중부경찰서 을왕리 여름파출소에 연락해 급하게 문을 열어 달라고 하니, 경찰들은 자신들 담당이 아니라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이곳 화장실 문이 잠겨있는 것을 자신들에게 따지는 것은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고 따지는 것과 같다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이제 막 경찰생활을 시작하는 말단도 아닌, 꽤 연륜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한 말이라 더욱 화가 났다. 그는 끝끝내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쯤 기다리던 동료들이 와서 화장실 앞 중부소방서에 문을 열어 달라 요청을 하고, 결국 소방관이 장비를 이용해 장애인여자화장실 자물쇠를 열었다.
 
하지만 열어보니 더 기가 막혔다. 안쪽은 대형박스 쓰레기로 꽉 차있었다. 소방관들의 도움으로 겨우 들어가긴 했으나 문을 잠글 수도, 그 어두고 컴컴한 곳에서 전등조차 켤 수 없었다. (그 때는 밤 11시경이었다). 세면대 역시 겉모습만 멀쩡해 보일 뿐 물도 나오지 않았다.
 
동료들이 여기 저기 전화해서 어렵게 인천 중구청의 지역 담당자와 통화가 됐다. 하지만 정작 담당자는 자기 관할구역에 장애인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는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라고 변명했다.

중부소방서에 요청해 장애인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곳 장애인화장실은 처음부터 사용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 새벽, 나머지 MT일정을 꿋꿋이 즐기고 돌아온 우리는 인천DPI와 공동으로 항의 성명을 작성해 인천 중구청과 중부경찰서에 보냈다. 이틀 뒤 중구청 담당자가 사과전화를 해왔다. 화장실 사용에 불편을 준 것에 대해서, 관리시정을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비록 불쾌한 사건이었지만 정중한 그의 태도에 마음이 다소 풀렸다.
 
하지만 중부경찰서의 태도는 대조적이었다. 끝내 한 통의 사과전화도 없던 경찰서 측은, 내가 개인적으로 경찰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형식적인 답글을 달았을 뿐이다.
 
나와 우리 동료들은 화가 나서 무턱대고 항의하는 것이 아니다. 을왕리 해수용장을 이용했던 이용자로서 장애인화장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인천 중구청 담당자와 화장실 관리자, 그리고 그날 밤 그곳 담당이었던 파출소의 경찰로부터 사과를 듣고 싶었다.

이번 일을 정리해 보자면 세 가지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첫째, 그곳 장애인화장실은 처음부터 사용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퇴근하며 열쇠를 가져갔단 말은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장애인은 밤엔 볼일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아니, 장애인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했을까?
 
둘째,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시민에게 책임 소재만 따지며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거부한 인천중부경찰서 을왕리 여름파출소의 당일 밤근무 경찰들에게, 무엇이 그들의 할 일인지를 묻고 싶었다.
 
셋째, 전혀 쓸모 없어 보이는 장애인화장실 열쇠를 들고 퇴근했다던 을왕리 부녀회 책임자나 장애인화장실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중구청 직원에겐 항의할 마음에 앞서 한심한 마음을 느꼈다.
 

안쪽은 대형박스가 꽉 차있었고 전등도, 물도 사용할 수 없었다.


장애는 사회환경과 인식에 따라 ‘상대적인 것’

 
불빛도 없고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볼일을 본 그때의 기분은 모욕감 그 자체였다.
 
올 4월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차별의 종류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직접적 차별, 간접적 차별, 그리고 정당한 편의제공이다. 장애인이 이에 해당하는 차별을 받았다면 그 가해자(단체)는 처벌을 받게 된다고 명시한 법률이다.
 
그 내용 중 제18조 ‘시설물 접근‧이용의 차별금지’에는 ①시설물의 소유‧관리자는 장애인이 당해 시설물을 접근‧이용하거나 비상시 대피함에 있어서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이번 “을왕리에서 생긴 일”은 아마도 위 세 가지 모두에 해당될 듯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중도에 장애인이 되면 평생 장애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나는 장애는 상대적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여유롭게 여름 나들이를 즐기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인 ‘볼일’조차 맘 편히 못 보는 “중증의 장애인”이 되느냐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환경에 달려있다.
 
법만 그럴듯하게 만들어놓고 건물만 버젓이 지어놓는다고 해서, 사회가 예전보다 나아졌고 발전했다고 볼 수는 없다. 비장애인에게는 이 사건이 어떻게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사회에서 부지기수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이라면 흔히 겪게 되는 이런 사건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봤으면 한다. [일다] 류나연/서울DPI 조직국

[장애여성 이야기]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내부장애’
/ 이희연  2001년의 그녀에게 / 류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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