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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은폐된 친족성폭력,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홈> 
 
※ 필자 너울 님은 <꽃을 던지고 싶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나는 왜 이 영화를 외면하고 싶었을까
 
아오리 감독의 <잔인한 나의, 홈>은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돌고래는 가부장인 ‘아빠’에 의해 7살에 첫 성추행을 경험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 강간이 시작된다. 그것이 아빠의 ‘특별한 사랑’이라는 믿음은 돌고래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게 된 책으로 인하여 ‘성폭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름을 얻게 된 그 ‘특별한 사랑’은 더 이상 특별하지도, 사랑도 아니었다. ‘폭력’이라는 본질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돌고래는 그 본질과 맞서 혼자 외로운 투쟁을 시작한다. 가해자가 있는 공간으로부터 탈출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안전하고 사랑으로 가득하다고 믿는 그 공간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곳으로 변해 버린다.
 
첫 시사회, 인권영화제에서의 상영, 그리고 공동체 상영까지. 그 동안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보고 싶다는 마음과 꼭 보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속 당일에는 어김없이 몸에 탈이 나거나 없는 핑계를 만들어가면서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서 5분 거리의 여성단체에서 공동체 상영을 한다며 ‘꼭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감독과의 대화도 마련되어 있는 자리라 했다. 이번에는 꼭 가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면서, 내가 왜 이 영화를 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진실’을 말하면 해체되는 ‘가족의 진실’

▲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에게 ‘가족’은 무엇인지,  사회가 안전하다고 믿는 ‘집’이 얼마나 잔인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잔인한 나의, 홈 
 
대다수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바이고, 생존자인 은수연 씨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에서 증언한 것처럼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돌고래를 믿어주는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야만 ‘가족’이 유지될 수 있고, ‘정상가족’은 지켜질 수 있기에 가족들과 친척들은 돌고래의 진실을 외면한다. 피해자의 투쟁은 ‘가족을 해체’하는 행위로 비난받고, 피해자는 ‘아비를 신고한 파렴치한 년’이 되어버린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가족’은 무엇인지, 사회가 안전하다고 믿는 ‘집’이 얼마나 잔인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친족성폭력이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가 아닌 삶의 맥락 속에서 맺고 있는 관계의 이야기임을 드러낸다.
 
성폭력생존자들에게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의 경험을 인정받고 지지받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기에 돌고래는 ‘인정 투쟁’을 시작한다. 자신이 경험한 일이 ‘사실’이라는 것과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사건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지속가능한 시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돌고래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법을 통해서 그가 당한 일이 성폭력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 그리고 돌고래가 ‘자신의 엄마’이길 바라는 사람과 자신이 지켜주고자 했던 ‘동생들’에게도 이를 인정받는 것. 왜곡되어 버린 삶과 관계를 지속가능한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그의 ‘인정 투쟁’의 향방은 우리사회의 성숙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녀의 인정투쟁은 어떤 결론을 향하고 있을까?
 
증언도, 치유도 오로지 피해자 몫인 사회에서

이 영화에는 눈 내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 잔인한 나의, 홈 
 
다시, 내가 이 영화를 왜 외면하고 싶었을까를 고민해 본다. 성폭력이라는 주제가 갖는 묵직함과 그로 인해 갖게 되는 가슴 한구석의 뻐근함. 그리고 피해자의 생존 이야기 속에서 치유의 험난한 과정을 마주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빠지는 것이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애써 외면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나의 평온을 유지하길 바라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선명히 깨달은 사실이 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돌고래와 아오리라는 매력적인 두 여성이 있기에 가능했지만, 그것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성폭력을 증언하는 것도 치유도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 것인지 진지한 물음을 갖게 한다.
 
한 편의 책, 한 편의 영화로 성폭력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다만 이 영화를 보고 관계맺음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 주변의 사람 중에 또 다른 ‘돌고래’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인정’ 투쟁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나의 관계맺음 속에서 그들이 ‘진실’이 거짓이기를 희망한 적은 없는 지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가 이 영화를 외면하고자 했던 것처럼, 우리가 외면하는 것을 선택해서 그들의 진실을 침묵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생존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이 영화에는 눈 내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내리는 눈이 세상을 덮는 것처럼 진실이 은폐되고 깨끗해 보일지라도, 그녀의 증언은 선명한 발자국을 만들어 내며 진실을 향해 홀로 걷고 있다. 그녀의 발자국은 묻혀 버린 진실 그리고 가부장제가 낳은 추악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녀의 발자국을 따라 함께 걷다보면 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여전히 진행 중인 그녀들의 투쟁이 길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 매력적인 캐릭터의 생존자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7월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될 예정입니다. http://blog.naver.com/movie_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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