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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역사] 사할린 한인의 영주귀국과정③

75년전, 일제에 의해 강제이주 당하고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할린 한인의 역사와 삶, 그리고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를 짚어보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 기사를 연재합니다. 최상구님은 지구촌동포연대(KIN) 회원으로 사할린 한인 묘지조사 후속작업, 영주귀국자 인터뷰 등 ‘사할린 희망캠페인단’ 활동을 펴오고 있습니다. - www.ildaro.com

 
‘1세’라는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의 조건
 
사할린에 남겨진 한인들의 문제를 풀기 위해, 1994년 한국과 일본 양국 공동조사단이 사할린에 파견된다. 일본 측은 외무성 북동아시아과와 일본적십자사가, 한국 측은 국무총리실과 외무부, 보건사회부, 대사관, 그리고 대한적십자사로 구성되었다. 공동조사단은 사할린주 한인노인협회 등을 통해 영주귀국 희망자를 파악하고, 사할린 잔류 한인들의 생활 실태와 요청 사항을 파악하는 한편, 사할린주 당국과 적십자사와의 협조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이후 8월에 열린 5차 한일 실무협의회에서, 사할린에 잔류한 한국인 중에서 한국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 전원을 대상으로 귀국사업을 추진키로 하였다. 이를 위해 영주귀국자를 위한 주택과 요양시설에 건설에 필요한 부지는 한국 정부가 제공하고, 건설 비용과 정착지원금은 일본 정부가 제공한다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이에 필요한 경비를 1995년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사할린 잔류를 선택한 사람에 대해서도 개인 보상을 검토한다고, 이가라시 관방장관이 밝히기도 했다.
 
한일 양국의 움직임에 맞추어, 사할린주 한인노인협회는 다음과 같은 요구 사항을 1994년 5월 일본 외무성에 제출하였다.
 
  ▲ 1945년까지 출생자들을 1세로, 이후 출생자들을 2세로 취급해 보상할 것.
  ▲ 한국으로의 영주 귀국은 연령을 기준으로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1938년 이전 출생자들을 우선적으로 귀국시키되 희망하는 가족과 동반 귀국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할 것.
  ▲ 거주지는 본인의 희망지에 주택을 제공할 것.
  ▲ 1세들은 사망 시까지 생활비와 치료비를 지급할 것.
  ▲ 소유 재산을 한국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연금생활자의 연금을 한국으로 보낼 수 있게 할 것.
  ▲ 사할린에 계속 남는 것을 희망하는 한인들에게는 1인 1천만엔씩 보상할 것.
  ▲ 사할린 거주 한인들의 민족문화 재생을 위해 민족학교와 문화센터를 건설할 것.
  ▲ 사할린 거주 한인들이 이중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할 것.
  ▲ 일제시대 사할린에 왔다가 러시아 본토로 이주한 한인들에게도 동일한 조건으로 보상할 것.
 
당시 ‘1세’에 대한 규정은 이들이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영주 귀국 대상에 있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희망자 전원에 대해 영주 귀국을 언급했고, 과거 사할린에 있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귀환되는 과정에서도 희망자 가족 전원을 인양했던 것처럼(심지어 유골 봉환까지 하였다.) 연령을 고려하여 순차적으로 귀국시켜 달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기준은 어느 시점에선가 영주 귀국 대상을 한정 짓는 조건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만다. 영주 귀국 대상자의 범위 선정과 시기, 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1세들만이 영주 귀국 대상으로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한일 적십자사에 의해 실시된 영주 귀국 시범사업의 대상자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 이주 또는 사할린 출생자
  ▲ 러시아 국적, 또는 무국적자 (북한 국적 제외)
  ▲ 고령자, 무자녀 또는 독립 세대를 구성하고 있는 자
  ▲ 정신적 또는 전염성 질환이 없는 자
  ▲ 지역 구분 없이 2인 연령을 합산한 고령자 우선
  ※ 2004년부터 대륙에 거주하는 1세도 포함
  ※ 2008년부터 한국 정부가 1세와 결혼한 배우자 중 2세와 장애인 자녀 포함
 
그리고 사할린 한인의 영주 귀국에 대한 한일 양국의 지원 사항은 다음과 같다.

한인 1세의 귀국 후에 순차적으로 영주 귀국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사할린 한인들에게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1세들만 영주 귀국할 수 있게 되자, 이들은 다시 한번 이산의 아픔을 겪게 된다. 사할린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한국으로 들어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될 때 부모형제와 떨어졌고, 태평양 전쟁 중에는 3천여명이 사할린에서 다시 일본 본토로 끌려가 사할린에 있는 가족들과도 헤어졌던 이들에게, 또 한번 이산의 고통을 강요한 것이다. 비인간적인 영주 귀국 조건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배우자를 찾습니다
 
“배우자를 찾습니다. 19XX년 X월 생의 여자가 19XX년생 이상 나이의 남자분과 결혼하고 한국으로 영주 귀국할 마음이 있습니다. 이름은 XXX입니다. ☎ XXX-XXX.”
 
사할린에서 발행되는 한글신문 <새고려신문>(cafe.naver.com/sekoreasinmun)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문구이다. 한국으로 영주 귀국하고 싶은데, 결혼은 왜 해야 하는 걸까?
 
사할린 동포의 영주 귀국은 인천 사할린동포 복지관, 안산 요양원 등 시설로 홀로 가거나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영구임대아파트의 입주 조건은 2인 기준이다. 이 조건 때문에 영주 귀국을 하기 위하여 황혼 결혼을 하거나 남-남, 여-여 커플로 짝을 지어 귀국하기도 하였다.
 
수십 년 같이 산 부부도 다투기 일쑤인데, 이렇게 급조된 커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2006년에 합의 결혼을 하고 온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영주 귀국 후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례들을 보면, 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귀국 사업인가 의심하게 된다.
 
영주 귀국의 조건에 맞춰야만 귀국할 수 있었던 사할린 한인들의 기구한 사연들은 줄을 잇는다.
 
일본과 공동으로 영주 귀국 시범사업을 하기 전의 “영주 귀국 처리지침”은 독신자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즉, 춘천 사랑의 집이나 고령의 대창양로원의 경우, 부양자가 없는 고령 독신자들을 대상으로 수용하였다.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이혼을 하고 홀로 영주 귀국한 사례도 있고, 위장 이혼을 하고서 같은 시설에 부부가 따로 들어오기도 하였다.
 
대부분 남성이 홀로 먼저 영주 귀국을 했는데, 그 후 부부가 함께 들어올 수 있는 시범사업이 시작되자, 다시 사할린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부부가 함께 영주 귀국을 신청한 경우도 있다. 이때는 남편은 한국 국적이고, 부인은 러시아 국적이기 때문에 재결합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할린 영주 귀국 관련 연표]

▲ 1988년 구소련,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사할린 동포의 친족 방문 목적 출국을 원칙적으로 허용
▲ 1989년 구소련, 사할린 동포의 일시 모국 방문과 영주 귀국 허용
▲ 1990년 한국 정부, 영주 귀국 업무처리지침 수립
▲ 1992년 춘천 사랑의 집으로 독신자들 영주 귀국
▲ 1994년 한일 공동조사단의 사할린 동포 실태조사, 대창양로원으로 독신자들 영주 귀국
▲ 1995년 일본 정부가 정착시설 지원금 32억엔을 일본적십자사에 입금
▲ 1997, 1998년 임대아파트 100가구(서울 등촌동, 인천, 부천)에 영주 귀국
▲ 1999년 인천 사할린 동포 복지회관 개원
▲ 2000년 총 489세대 967명 안산 ‘고향마을’ 입주
▲ 2005년 안산 요양원 개원
▲ 2007년 인천 논현동 임대아파트 582명 입주
※ 2013년 1월 현재 총 4천116명이 영주 귀국하여 3천114명 국내 거주
 
우리 사회의 책임을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이러한 사태의 책임은 영주 귀국 사업을 주도한 일본뿐 아니라 사할린 한인의 귀환 문제에 대해 일본의 책임만을 강조하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한국 측에게도 있다.
 
사할린 한인의 영주 귀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5년부터 국회에서는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논의가 현재까지 지속되어 왔다. 예산 부족과 현재 러시아 국적을 지닌 한인들을 영주 귀국 대상으로 포함시켰을 때 발생할 외교적 마찰 등을 이유로, 외무부 등 관계 부처가 계속 반대했기 때문이다.
 
동포의 보호와 귀환이라는,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라면 외교적 마찰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고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외무부가 할 일 아닌가? 외무부가 해야 할 일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외무부가 동포의 귀환과 지원을 반대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 17대, 18대 국회 그리고 현 19대 국회까지 입법 과제를 미루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 <사진: 안산 고향마을에 있는 모자상>     © 최상구 
 
영주 귀국 지원사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철저하게 ‘1세’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는 2013년 3월, 사할린 한인 단체장들이 일본 적십자를 방문했을 때도 일본 측에서 강조했던 사항이다.
 
그러나 애초에 사할린 한인들을 적시에 귀환시켜야 했던 책임을 불이행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 4세까지 내려온 사할린 한인들에 대한 책임도 일본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1세만을 지원 대상으로 한정 짓는 것은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기준이며, 영주 귀국과 관련해서도 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한인들은 또한 2009년 영주 귀국 희망자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2013년 영주 귀국사업을 종료하려는 일본 측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강제동원으로 가족의 이산과 해체를 강요당했던 사람들이 고향 땅을 밟는데도 다시금 가족의 해체를 강요당하고 있다. 부모와 자신, 그리고 자녀까지 삼대에 걸친 가족의 이산이라는 잔혹사가 바로 우리가 사할린 한인 영주 귀국이라 부르는 것의 실체이다. (최상구)

[참고 문헌]

강정하 “사할린 잔류 한인의 영주귀국을 둘러싼 한-일-러 교섭과정 연구”, 한림대 국제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
김성종 “정책옹호연합모형을 통한 정책변동과정 분석: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사례”, 한국 동북아논총 제 53집, 2009.
배수한 “영주귀국 사할린동포의 거주실태와 개선방향: 부산 정관 신도시 이주자 대상으로”, 국제정치연구 제 13집 2호. 2010.
외교통일위원회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검토보고서", 2013.
이토 다카시, 김문규 옮김 <사할린 아리랑-카레이스키의 증언> 눈빛, 1997.
정근식, 염미경 “사할린 한인의 역사적 경험과 귀환문제”, 한국사회학회 후기사회학대회 발표문, 1999.
조재순 "사할린 영주귀국 동포의 주거생활사: 안산시 고향마을 거주 강제이주동포를 중심으로", 한국주거학회 논문집, 2009.
지구촌동포연대 "사할린한인 역사회복을 위한 국제워크숍 in Sakhalin", 2007.
지구촌동포연대 "영주귀국 사할린동포 처우개선을 위한 1차 실태조사", 2009.
최길성 <사할린 유형과 기민의 땅> 민속원, 2003.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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