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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이 시대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질병판매학 外
 
산골에서 자급농사를 지으며 살고있는 도은 님의 연재. 두 딸과 함께 쓴 “세 모녀 에코페미니스트의 좌충우돌 성장기”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건강과 병과 치료에 자율성을 갖고 싶다

봄바람에 마음은 들뜨는데 몸은 기운이 없다. 기다리던 봄이 오고 있으니 할 일도 많고 하고픈 일도 많은데 나는 코를 훌쩍이고 콜록거리면서 햇살 환한 마당가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내 몸은 오락가락하는 꽃샘추위와 황사먼지와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해서 몸살감기란 신호를 보내온다. 좀 살펴보라는 것이겠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수없이 자잘한 변화들과 자기 몫의 고통을 겪어내면서 한 생을 살다 간다. 봄꽃이 피고 지고 꿀벌들이 또다시 꽃을 찾아 다니듯.

 

아픔과 병이 찾아오면 우리는 불현듯 허약한 자신의 실존을 깨닫는다. 병이 두려운 많은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거나 한 움큼의 약을 삼킨다. 모든 것을 소비하는 현대 사회는 건강과 병과 치료조차도 소비해야 할 무엇으로 보는 모양이다. 산업화된 의료제도가 아주 막강하게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어디서나 만나게 된다.

  
우연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자기 몸 상태를 어찌 그리 잘 아는지 놀랄 때가 종종 있다. 혈당이 얼마고, 혈압 수치가 얼마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얼마이고,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고 등등. 내 몸을 그런 식으로 바라본 적이 별로 없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런 수치들과 의료 검사 언어들은 최근에 생긴 것일 텐데, 마치 예전부터 내려오는 고정불변의 언어처럼 의사도 아닌 일반인들이 유창하게 쓰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런 상황은 너무 많은 건강 검진과 지나친 의료 과신의 결과인 것 같다.
 
어느 날 팔순이 다 된 마을 할머니가 건강검진 기록표를 손에 들고 우리 집에 찾아오셨다. 자기는 뭔 소린지 도통 읽을 수가 없으니 나더러 해석해달라고 하신다. 소변 검사, 엑스레이, 혈액 검사 같은 갖가지 검사 기록들이 조밀한 수치들로 나열되고 이상한 도표들까지 그려진 기록표였다. 나도 그걸 해석한다고 한참 애를 먹었다.
 
뭔가 대단한 병이 있을까 봐 근심에 찬 할머니에게 “별다른 큰 병은 없으신 것 같다, 혈압은 그리 높지 않고, 혈당도 괜찮고 어쩌고” 되도록 쉽게 이야기를 해드리다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니, 이건 자기들만 아는 수치들 아냐? 정상과 비정상의 수치 그리고 건강과 질병의 기준을 대체 누가 정하는 거야?’
 
이때의 ‘자기들만’이란 의사들과 의료산업 종사자들을 말한다. 또 지금의 대중매체가 부풀리고 선전하는 건강 상식과 의학 상식들을 진리인 양 신봉하는 사람들도 포함되겠다. 그런데 이들은 현대 의료 산업이 얼마나 거대한 권력과 글로벌 시장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보고 있는 것일까.
 
점점 더 많은 보통 사람들이 환자로 분류된다 
 

▲ 레이 모이니헌, 앨런 커셀스 <질병판매학> 
 
<질병판매학>(레이 모이니헌, 앨런 커셀스. 알마, 2006)을 읽으면 사람들이 지불하는 막대한 의료비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서 다국적 제약회사와 보험공단이나 식품의약국 관료들과 의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지를 비교적 잘 알 수 있다. (한국어 번역자는 자신이 다국적 제약회사의 후원으로 해외 학회를 수 차례 다녀온 전력 때문인지, 아주 조심스러워하며 옮긴이 머리말을 썼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마케팅 전략이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표지에는 30여 년 전 한 유명한 다국적 제약회사 사장의 오랜 꿈이 실려 있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약을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 껌처럼 보통의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우리 회사의 약을 파는 것, 그것이 나의 오랜 꿈입니다.”
 
30년이 지난 오늘, 그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이제 건강한 사람의 기준이 모호해졌다는 뜻이다. 일상생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시적인 감정 기복은 우울증이니 행동과잉장애니 하며 정신 질환의 하나로 여겨지고, 감기처럼 누구나 경험하는 흔한 증상조차 무시무시한 질병의 전조증상으로 간주된다. 점점 더 많은 보통 사람들이 환자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기준에 의하면 지금 잠시 골골거리는 나도 틀림없이 약물치료와 병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요 몇 년 사이에 사람들의 ‘자발적 환자 되기 증상’을 글로 읽거나 대화 도중에 가끔 접한 기억이 난다. 자기는 월경 전 불쾌 장애가 있고, 과잉행동장애가 있고, 호르몬 결핍질환이 있다 등등.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이런 식의 진단 의료언어들을 너무 쉽게 사용하는 것 같아서 나는 참 이상했다. 사실 생리를 앞두고 약간 예민해질 수 있는 거고, 살짝 산만한 기질일 수 있는 것이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호르몬이 사라지고 그런 것 아닌가? 왜 유독 현대에 와서 이런 질환과 장애를 설명하는 언어들이 이토록 많아졌고 또 널리 대중화되었을까?
 
현재 미국은 전 세계 처방약품 시장의 거의 5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심장병 치료제나 항우울제 처방 같이 광고가 활성화된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자연적인 노화 과정도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만드는 것이 질병판매 전략들이라는 것이다. 또 예전 사람들은 흔히 겪어서 그저 불편함 정도로 여겼을 문제들인 대머리, 얼굴 주름, 성적 트러블 등의 상황들을 약물 및 의학적 조치가 필요한 질병으로 확신하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공격적 마케팅 전략이라고 한다.
 
하여간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질병을 창조하는 비즈니스”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더 심한 것 같다. 수많은 부작용으로 미국 내에서는 논란 끝에 판매 금지 조치된 약들이 이름만 살짝 바꾼 채 한국에 수입되어 처방되고 있다. 마치 맹독성 살충제인 DDT가 미국 내에서는 거센 환경운동으로 금지되었지만, 남미나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국에는 지금도 매년 수만 톤씩 팔려나가듯이 말이다(정말 너무하다!).
 
의약 시장은 모두 “대중의 공포심을 바탕으로 형성된 시장”이다. 또 “두려움을 마케팅”하는 판촉 전략이다. 의사들과 제약회사들은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더 많은 약을 팔기 위해서 불필요하게 질병의 범주를 넓히고 있다. 게다가 병원 검진의 기계의존도는 또 얼마나 심한가. 이제 의사는 더 이상 환자를 바라보지 않는다. 오직 비싼 기계만 바라본다. 기계가 하라는 대로 따라 하고, 기계의 결과에 복종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는 10가지 질병 판매 전략이 나와 있는데, 지금 모두 한국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들이다. 콜레스테롤을 심장마비와 돌연사의 주범으로 몰기, 고혈압의 정상 범위를 좁히기, 골다공증 위험을 퍼트려서 젊은 여성까지 위험군에 포함시키기, 과민성 대장증후군, 마음이 아닌 뇌에 문제가 있으니 약을 먹어야 하는 우울증, 모든 여성을 잠재적 고객으로 만들려는 월경 전 불쾌장애, 정상적인 노화과정도 질병이므로 호르몬 치료제가 필요하도록 설득하는 폐경기, 주의력결핍장애, 사회불안장애, 여성 성기능장애 등이 모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병을 홍보하는데 아주 열심이다. 몸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너무나 잘 이용해서 말이다.


의료화된 삶, 병원이 병을 만든다 

▲  이반 일리히 <병원이 병을 만든다> 
 
좀더 깊이 있게 산업 서비스 제도인 병원 문제를 성찰하고 싶은 사람은 <병원이 병을 만든다>(이반 일리히. 미토, 2004)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미 돌아가셨지만 이반 일리히는 내가 스승으로 삼고 싶은 분이다. 그의 책 <학교 없는 사회>나 <자율적 공생을 위한 도구>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제도에 의존하는 삶이 아닌 자율적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준 책들이기 때문이다.
 
일리히의 책들은 대중적 글쓰기가 아니고 사유가 치밀해서 쉽게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아주 또렷하다. 현대 산업사회에 대한 근현대인의 맹신을 분명하게 비판하고 분석한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일리히에 따르면 학교는 교육에 오히려 장해물이고, 병원은 건강에 장해물이고, 근대화는 빈곤을 없애기는커녕 빈곤을 근대화하고, 국가 교육에 의해 국민의 언어 능력이 쇠퇴한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사상은 제도에 의해 관리된 삶이 아닌 자율적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책의 원저는 <의료의 한계, 의료의 복수: 건강의 착취>(Limits to Medicine, Medical Nemesis: The Expropriation of Health)로 1976년에 초판이 나왔다. 병원과 의사가 만드는 병을 ‘병원병’이라고 지칭하면서, 임상적 병원병, 사회적 병원병, 문화적 병원병이라는 세 가지 면에서 산업적 서비스 제도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의미를 깊이 있는 사유로 분석하고 있는 글들이다. 결국 일리히는 과학기술 문명의 과도함이 부른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관계 속에 내재된 병원병은 현재의 모든 사회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은 풍요에 의해 자유가 안에서부터 식민지화한 결과이다. 부유한 국가에서 의료의 식민지화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진척되어 있고, 가난한 국가도 급속히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내가 ‘삶의 의료화’라고 부르는 이 과정은 명확하게 정치적으로 인식해야 마땅하다.”
 
일리히는 현대 의료는 일종의 유행병이자 흑마술이라고 진단한다. 우리의 삶과 생활이 의료화 되면서 과잉 진료, 제국주의적 진단행위, 의약품 남용, 상품이 되어버린 병상에서의 죽음 등을 분석한다.
 
“현대인은 의료 없는 죽음을 공포라고 본다. 그 때문에 인생은 마지막 순간의 혼돈스러운 전쟁을 향한 경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제 개인은 독자적인 자기 확신을 잃었다. 그 결과 인간은 자신의 때가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죽음을 맞는다는 자율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사회의 의료화는 자연사의 종언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죽는다고 하는 스스로의 행위에서 주체적인 권리를 잃고 말았다.”
 
고통에 대한 일리히의 성찰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현대에 늘어나는 고통은 대부분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산업 확대 전략의 부산물이다. 고통은 이제 ‘자연스러운’ 또는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저주이다. ‘대중’이 고통으로 타격을 받고 있을 때, 그들이 사회를 저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산업 시스템은 대중에게 의료적인 진통제들을 투여한다. 그리하여 고통은 더 많은 약, 병원, 의료 서비스, 무수한 단체들에 의한 치료(치유 행위)로 변화되었다.”
 
“의료 문명은 고통을 증명될 수 있고, 측정될 수 있으며, 통제될 수 있는 체계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나는 나의 고통과 함께 철저히 고독하다.”
 
교육이든, 농업이든, 의료이든, 수송이든 어떤 수준을 넘어서 기술적 공업적 방법으로 가게 되면 생존 활동은 힘겨워지고, 공정함은 쇠퇴하고, 만족감은 감소한다는 일리히의 주장에 나는 많은 부분 동의한다. 감정이든 물질이든 모든 점에서 극도의 과잉이 넘쳐나는 지금은 정말로 네메시스(복수의 여신)의 출현을 두려워해야 할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쉽고 부작용 없는 치료, 북한의 민간요법 

▲ 민족의학연구원 엮음. <약 안 쓰고 병 고치기>  
 
마지막 책은 아주 쉬운 북한 책이다. <약 안 쓰고 병 고치기>(민족의학연구원 엮음. 보리, 2009)인데, 읽기도 쉽고 매우 간단한 치료법들만 소개되어 있어서 온갖 외래어가 뒤범벅인 병원의 진단 수치나 검사 결과에 찌든 사람이라면 미소가 절로 지어질 것이다.
 
북한에서 나온 <토법의 림상응용>이란 책을 남한 실정에 맞게 조금 손보아서 펴낸 책이다. 일종의 민간요법을 북한에서는 ‘토법’이라고 하나보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아무 부작용 걱정 없이 집에서 간단히 해볼 수 있는 요법들이 잘 나와 있다. 누르기, 자극주기, 찜질, 땀내기, 운동, 물 맞기, 온천요법, 쉬운 약초 요법들이다. 경혈자리 표시도 잘 되어 있다.
 
내 삶이 거대 의료산업의 포로가 되는 일을 경계하고 자율성을 지키려는 행위는 나름대로 정치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된다. 의료 산업계가 보면 ‘병원에 가지 않고 처방약도 먹지 않는 괘씸죄’를 범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든 말든 나는 아주 뜨거운 생강차를 훌훌 마신 다음 땀을 푹 내고 이 환절기 감기를 이겨내야겠다. (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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