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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던지고 싶다> 26. 살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성판매 여성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30회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 www.ildaro.com 
 
2008년에 영화 <추격자>가 개봉되었다. 희대의 살인마와 그를 추격하는 포주(성매매 알선업자)의 이야기이다. 전직 형사였던 포주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성판매 여성이 사라지자 그 여성을 콜한 살인마를 쫓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영화 속의 살인 장면과 이야기가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 일어났던 연쇄살인사건 때문에 흥행에 성공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 미진과 현실 속 ‘마사지 걸’ 

▲ 영화 <추격자> 속 미진은 아이를 하나 키우고 있는 가난한 '마사지 걸'이다. 포주의 강요로 일을 나간 그녀는 연쇄살인범에게 희생된다.   
 
미진은 아이를 하나 키우고 있는 가난한 여자이다. 이 여자의 직업은 마사지 걸. 또는 성판매 여성 혹은 성노동자. 그녀는 어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성판매를 한다. 그녀는 많은 성산업 중에 ‘출장마사지’라는 형태의 일을 한다. 포주의 전화를 받고 고객과의 약속장소에 가서 성판매를 하고 대가를 지불 받는 그런 일이다. 알선업자의 역할은 성구매자와 이 여성을 전화를 통해 중개하고 수수료를 받는 형태의 업이다.
 
미진은 그날 몸이 너무 아팠다. 그러나 ‘아가씨’가 부족했던 상황이라, 포주의 강요로 일을 나가게 된다.
엄중호는 전직 형사이다. 그런 그가 왜 포주가 되었을까?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성매매 알선업자이다. 아가씨가 계속 사라진다. 미진이 사라진 날 그는 범인을 추격하게 된다.
 
성산업 공간은 가장 은폐되고 은밀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성판매 여성들은 개인적인 역사와 맥락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고 사회적 자원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거래나 이 영화 속에서처럼 보도방을 통해 이루어지는 성판매의 경우, 대부분 여성들이 보호 받을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다.
 
성판매 여성이 사라졌다. 그 여성을 누군가 찾아 나서거나 혹은 보호할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안전했던 것은 수많은 행운이 따랐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하면서 보아온 다른 여성들을 포함하여 성판매 여성들이 본명을 쓰는 경우는 없다. 보도방은 전화를 통해서만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라서, 여성들이 전화를 받지 않거나 혹은 연락 없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는 너무도 흔한 일이다. 영화 속의 미진이나 나처럼 연락할 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넘어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추격자> 속 미진의 상황은 현실에서도 가능한 상황이다. 자원이 빈약하고 소외되는 여성들이 성산업에 유입되기 쉬운 상황에서, 그리고 그 여성들의 안전에 관심 갖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회에서, 언제든 위험에 처할 위치에 있는 것이다.
 
성판매 경험을 인정하고 용서한다

 
내가 성판매를 그만둔 것에는 딱히 다른 계기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성판매를 하지 않아도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있을 만큼의 학력과 기회가 있었다. 가난했지만 큰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빚이 있지도 않았고, 그 일을 지속해야 할 다른 이유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 몇 년간 나는 미칠 것 같은 공포와 우울감에 사로잡히는 사월이 되면 성판매를 하러 나서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도 그러했고, 돈이 필요하지 않아도 성판매를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을 진정시킬 수 없는 시간들이 존재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내가 스스로 나를 죽이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성폭력 경험이 가져온 우울감이 나를 지배하는 시간이 오면, 나는 내가 사람이 아님을 확인해야만 했다. 내가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었다. 죽음도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다고 여겼기에, 나는 성판매를 통해서 나를 죽이는 방법을 택했다.
 
내가 사람임을 부정하고 싶은 순간에 ‘몸으로 치환되는 방법’이야말로 내가 이성과 감성이 있는 사람이 아님을 확인 받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성판매는 나의 감정과 이성적 사고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성폭력의 경험과 몸으로 치환되는 것은 비슷했지만, 공포와 무기력함은 훨씬 덜한 일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내가 성판매를 했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다.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심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성판매를 할 만큼 자원이 빈약하지도 경제적으로 취약하지도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성판매를 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하고 용서하기로 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방어기제였음을 알 것 같다. 비록 그 방어기제가 남들이 보았을 때 바람직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당시에 심리적으로 취약한 내가 살기 위해 선택한 최선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너울)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블로그> 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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