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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해주세요, 역사로 기록될 수 있도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과 함께하는 사진전 열려 

 
할머니께서 나무를 안고 계신다. 아니, 나무에 매달려 계신다. 적어도 백년은 넘게 살았을, 세월의 모진 풍파를 이겨내느라 한쪽으로 기우뚱해진 나무에 온몸을 맡기고 계신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계신다. 심장을 나무에 붙이고서, 나무 속 켜켜이 아픔을 흘려보내시려는 듯, 나무에 기대어 누워 계신다. 엄마 품에 그리운 아기처럼, 엄마 품에 잠든 아기처럼 할머니가 나무에 안겨 계신다.
 
그래, 너라면. 세상이 잊어버린, 세상이 밀어버린 그 일들을 다 알거야, 잊을 수 없을 거야, 잊지 않아 줄 거야.  

▲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함께하는, 이야기해주세요 전쟁·평화·여성” 사진전  

옆에는 다른 할머니가 계신다. 그만 하라고, 이제 그만하고 어서 가자는 보챔 한마디 없이 기다리고 서 계신다. 알아, 알아, 나도 다 알아. 그래, 그렇게 쉬어도 돼. 그렇게 있어도 돼. 같은 세월, 같은 고통을 겪고도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세상에 외면당하며 살아오신 할머니들은 그렇게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내고 계신다.

 
커다란 나무를 한껏 안고 계시는 할머니를 뵙고 마음이 먹먹하다가, 액자 유리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았던 할머니를 찾아내고는 ‘휴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 그래. 그래도 결국 곁에 있어야 하는 건 사람이지, 동무이지, 마음을 이야기하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지.

비루한 역사가 낳은 여성의 고통에 대해 국가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손주뻘 되는 전경들의 방패에 가로 막혀도 굴하지 않으셨고, 역사교과 왜곡에 항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시기도 했다.
 
역사의 희생자로, 정치적 이슈의 대상으로, 피사체로만 머무르지 않고 목소리의 주인으로, 수요시위의 주체로서 직접 영상을 기록하시기도 했고,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의 증거가 없다는 일본의 망언에 대해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며 “내가 아직 살아있다. 증거가 여기 있는데 증거를 대라니, 내 전 세계로 다닐 거다!” 라며 호통을 치시기도 한다.
 
1992년. 일본에게 국가적 차원의 사죄와 배상 요구를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는 어느 새 20년이 되었다. 이 기나긴 시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어제 10일부터 개최되었다.
 
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 재능 기부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역사적 진실임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문화예술 실천운동’인 [이야기해주세요]는 용산 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다.
 
평일 오후 6시까지만 열리는 사진전은 퇴근 후 찾아오는 발길을 기다려주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여성뮤지션들이 참여한 헌정 앨범 [이야기해주세요]의 콘서트가 열리는 12일(수요일)에는 공연 전(오후 7시 30분)까지 사진전을 연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으니, 이 감동의 사진전을 절대 놓치지 않길 바란다.
 
8월 21일 발매한 [이야기해주세요]는 한희정, 정민아, 오지은, 소희, 이상은, 지현, 무키무키만만수, 시와, 투명(정현서, 민경준), 황보령, 송은지, 남상아, 강허달림, Trampauline, 휘루 등이 “우리의 할머니들에게” 드리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답하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다양한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고 건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매력적이다.
 
11일(화)에 오후 4시와 6시에 상영하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감독 안해룡)는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 송신도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한 10년을 기록한 다큐이다.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2009년 여성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찾았는데, 호탕한 송신도 할머니와 따뜻한 마음의 일본여성들에게서 큰 에너지를 받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영관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9월 26일 인디스페이스에서도 상영된다.
 
기간이 짧아 아쉽고 평일이라 더 아쉽지만, 정말 필요하고 중요하고 감사한 행사이다. 모든 참여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충열)

* 제목 :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함께하는, 이야기해주세요 전쟁·평화·여성” 사진전
* 때 : 2012년 9월 10일(월) ~14일(금)
* 곳 : 용산아트홀 및 전시장(6호선 녹사평역 3번 출구, 도보 5분)
 
- 사진전 : 9월 10일(월) ~14일(금), 오전 10시~6시(공연이 있는 수요일은 7시 30분까지). 용산아트홀 전시장
- 영화상영 : 9월 11일(화) 오후 4시, 오후 6시. 용산 아트홀 대극장
- 콘서트 : 9월 12일(수) 오후 7시 30분. 용산 아트홀 대극장
(사진전 관람은 천원, 영화 상영은 2천원, 콘서트는 2만원의 입장료가 있다.)

- 문의 badasaram@gmail.com
       010-3423-8897 / 010-7269-5800
       facebook group [이야기해주세요]
       culzine.com

- 후원계좌 : 국민은행 206002-04-273460 안해룡(이야기해주세요)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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