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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만나러 가는 길 (47) 부치지 못한 편지 
 
[연재]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일다> www.ildaro.com
 

“엄마는 파리행 비행기 안에 있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로 지금은 많이 설렌다. 모든 것이 새롭겠지? 아니, 거기서는 좀 다르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를 못 보고 와서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후회하지는 않아. 너를 만났더라면, 발길을 돌릴 수 없었을 거야.
.......
이렇게 뒤돌아 가는 엄마에게 늘 너의 존재가 희망이고 기쁨이라는 걸 말하고 싶구나. 그래서 떠날 수 있었다고, 다시 돌아올 때도 나는 너 때문에 돌아올 거란다. 너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다시 우리 아가와 살기 위해. 힘들 땐 네 생각을 할게... 사랑해.”
 
1997년 6월 25일,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의 식사 메뉴판에 쓴 편지는 이랬다. 유학 당시의 서류뭉치들 틈에 어색하게 꽂혀 있었던 걸, 며칠 전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고는 그냥 바닥에 철퍼덕 앉아 이 편지를 읽었다.
 
거기에는 분명 다시 돌아와야 할 이유로 딸을 거론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애초 이 생각을 하고 떠났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 사이 한번도 이 글을 펼쳐보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중요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을 리 없다.
 
나는 오래 전부터 유학생활 어느 지점에서 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믿고 있더랬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데 마치 낡은 트렁크 속에 들어있는 먼지 자욱한, 누군가 오래 전에 내게 보낸, 그러나 전해지지 않은 편지를 들춰보는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15년 전 이맘 때, 이혼을 한 지 4년이 지나고 있었고,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이 땅에서는 제정신으로 세월을 빠져나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 도망치듯 떠난 유학이었다. 아이는 떠날 이유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때도 이미 돌아와야 할 이유였던 것이다.
 
그러나 떠날 당시조차 딸을 다시 만나기 위해 돌아올 거라고 마음먹었다는 걸 확인하는데, 기쁘기보다는 슬펐다. ‘너를 만나기 위해 돌아올 거다, 너와 살 거다’ 등의 편지 속 다짐이 현재가 아닌, 과거의 내 묵은 감정이라는 걸 맞닥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세월의 터널을 다 빠져 나와서는 아이를 만날 기대도, 함께 살 기대도 모두 접은 내가 서있을 뿐이다. 지금의 이런 나보다 뒤돌아 떠나면서조차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매달려 있는 과거 속 나를 보는 것이 더 슬펐다.
 
당시에는 이런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런 내 자신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만약 상상했다 하더라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딸과의 지리적인 거리가, 그녀를 보지 않고 산 세월의 거리가 소망했던 대로 딸을 만나지 않고도 잘살 수 있게 해주었고, 여전히 그렇게 잘 살고 있다. ‘떠나야 한다’는 판단이 옳았다.
 
그때, 떠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구질구질하게 보이는 짓들을 해가며, 딸을 만나게 해달라고 미친년처럼 헝크러진 머리로 울며불며 전남편을 쫓아다녔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건 말건, 아이가 보고 싶으면 늦은 밤이라도 달려갔었더라면...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았더라도 행복했겠다 싶다. 딸이 자라는 걸 봤을 것이고, 그녀를 만나면서 살았을 것이다. 물론 아이는 상처를 받는 일도 있었을 테고, 나도, 딸도 서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다투기도 했을 테지. 그렇게 나와 아이는 역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랬었다면 딸과 관련된 바람과 기대를 지금처럼 몽땅 접어야 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살지 않으려고 떠났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위해, 척척 발목을 휘감는 아이의 그림자를 떨쳐내기 위해 떠났다는 것이 어쩜 더 솔직한 고백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가 떠날 이유였고, 돌아올 이유였다는 건 틀린 말이다. 나는 나를 위해 떠났고, 돌아와서 아이를 만나지 않고도 내 삶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스스로 아이와 만남의 가능성조차 접을 수도 있게 되었던 것이다. 모두, 그때 떠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세월이 약’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옛날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나를 보는 것이 힘들지 않다. 아니, 도리어 지난날의 내 모습을 더 보기가 힘들다. 난 그저 망연하게 한참을 앉아있다가 그 부치지 못한 15년 전의 편지도 북북 찢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녁 준비도 해야 했고, 널어놓은 빨래도 걷어야 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일상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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