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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가까이 생활하며 연기하기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19. 길에서 만난 것들 
 
※ 뛰다는 2001년 ‘열린 연극’, ‘자연친화적인 연극’, ‘움직이는 연극’을 표방하며 창단한 극단입니다. 지난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20여 명 단원들이 폐교를 재활 공사하여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 짓고,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지역의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  시골마을 예술텃밭이 자리잡은 화천 폐교의 새싹들   © 뛰다 

왜 옥수수들은 저리도 씩씩하게 자라는 걸까?

 
씩씩한 옥수수의 성장을 보며,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일어날 때도 있다. 바싹바싹 붙어있는 옥수수들 사이에서 서로 더 많은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경쟁들이 있을까? 

▲  길가에서 쉬고 있는 청개구리   © 뛰다 

나는 이곳 화천의 시골마을예술텃밭에 자리 잡으면서 도시의 밀집된 환경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공간에서 연극을 통해 나를 되돌아본다. 더불어 내 삶을 연극에, 연극을 내 삶 속에 투영할 수 있을지 의심해본다. (‘의심’이란 말을 사용한 이유는 나 자신도 정확히 정의 내리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생활하는 것과 연기하는 것에서, 내가 어떤 것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아침 출근길에 자전거를 탄다. 그리고 그 길에서 수많은 것들을 본다.
 
자동차에 밟혀 붉은 내장이 터져 나온 개구리들과 뱀들의 시체, 어제보다 조금씩 더 자라난 벼, 가지에 촘촘히 붙어있는 새까만 오디들, 물고기를 잡는 두루미들, 어디론가 이동하는 새떼들, 논물에 고개를 쳐 박고 있는 오리들, 저 멀리 비를 담고 이동하는 구름들, 소나기의 빗줄기들. 

▲  무대 위 지연과 승준의 움직임   © 뛰다 

내가 본 것들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배우인 나의 신체를 통해 발산된다.
 
자동차에 밟힌 개구리의 붉은 내장의 이미지는 보다 강렬한 움직임으로 발전되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새떼들의 이미지는 천천히 시간을 여행하는 움직임으로 변화될 것이다.
 
내가 본 것들은 그대로 내 표현의 재료가 된다. 물론 서울에서 지낼 때에도 자연의 움직임을 상상하고 그것을 표현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있는 자연의 모습은 영상 속의 모습이 전부였다. 이곳, 화천에 나와 가까이 있는 자연의 모습은 영상 속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단지 아름다운 모습만이 아닌, 더럽기도 하고 때론 잔혹하기도 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길을 다니며 내가 본 모습을 하나하나 내 안에 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생활과 일에도 담을 수 있기를 바란다. 

▲ 비 오는 날 산책나온 부드러운 민달팽이    © 뛰다
 
그토록 추운 겨울을 지나고, 언 땅이 녹고, 흙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 새싹이 움트고, 새끼손톱만 했던 개구리가 엄지손가락만큼 자라나는 현상은 신비롭다. 다시 봐도 신기하고 또 봐도 의문스럽다.
 
난 가끔 연기를 하거나 훈련을 할 때 이 지구세계를 총괄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상상한다. 연하디 연한 새싹이 흙을 비집고 올라오는 이미지를.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준다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 <뛰다>의 다른 배우들과 이야기해본 적은 없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지, 이 글을 통해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계절이 움직이고 열매가 맺히고 잎이 지는 것을 지켜보는 행위는 나에게 평범하지만 또한 특별하다. 그것은 내가 보는 것들이며 피부로 느껴지는 것들이다. 나는 이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작은 욕구가 있다. 내가 본 것 그대로를 전달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것의 일부분이라도 나눈다면 조금은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승준 / 극단 '뛰다' 배우) 

※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카페 cafe.naver.com/tu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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