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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식량을 뺏는 무기가 된 기후변화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④ 빈곤 악화와 新제국주의 발현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는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일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동 기획으로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 기사를 연재한다. 필자 이진우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이다. <일다> www.ildaro.com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식량가격 폭등’으로 불안
 
우리는 2007년과 2008년을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해 중 하나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2007년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카메룬, 세네갈, 모리타니, 코트디부아르, 이집트, 모로코 등 수많은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봉기가 일어났고, 2008년에는 볼리비아, 예멘,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남미와 아시아에서 유사한 사태가 연이어졌다. 모두 ‘식량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특히 2008년 12월 멕시코에서 7만 명의 성난 군중이 수도에 운집해 격렬한 시위를 벌인 일명 “토르티야 폭동”에 이르러 ‘식량 위기’에 대한 불안은 정점에 달했다. 우리나라의 쌀밥에 해당하는 멕시코 주식이 ‘토르티야’이다. 주원료인 옥수수 가격이 몇 년 사이 80%나 증가하면서, 수급불안정을 넘어 생활 자체가 유지되기 힘든 실정이 됐다.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이 재계 대표들과 긴급회동을 가진 후, 150개 식품 품목에 대한 가격을 동결하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민심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식량가격지수(Food Price Index)를 보면, 2008년의 “식량폭동”은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식량가격지수’는 유엔식량농업기구가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식품 가격을 지수화한 것으로, 곡물과 유제품, 육류, 설탕 등 50여 개 주요 농산물의 국제가격을 모니터링하여 품목별 가중치를 조정해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2002년에서 2004년 사이 식량가격지수를 100으로 가정했을 때, 2012년 현재 식량가격지수는 194.8로 두 배 가까이 뛰어 올랐다. 이는 2007년과 2008년 지수였던 139.6과 164.6보다도 훨씬 높은 것이다.
 
그 증가 속도를 보면, 2008년 전세계 경제위기 때 잠깐 낮아졌던 지수가 계속되는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년 만에 원상회복된 것은 물론,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경제위기와는 별도로 식량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세계 식량가격지수 변화    © 자료: FAO 

쌀 밀 옥수수 생산량 크게 감소, 기아인구 증가

 
식량가격이 급격하게 뛰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꼽히고 있다. 첫 번째는 ‘소비량의 증가’다. 지구 인구의 증가는 물론이고 특히 중국, 인도와 같이 경제가 고성장하고 있는 국가의 국민들의 식습관이 변화하면서 식량 수요가 늘어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특히 육류제품과 유제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두 번째는 ‘식량과 바이오연료의 경쟁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의 코앞으로 다가온 석유 고갈 문제와 수송분야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옥수수, 사탕수수 등 식량을 연료화하고 있다. 바이오에탄올과 바이오디젤이 그것인데, 식량을 연료화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수요가 발생했다. 바이오연료에는 각국이 보조금까지 주고 있는 상황이어서, 당분간 식량을 연료화하는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이상기후’에 의해서다. 극단적인 가뭄과 홍수로 인해 작물이 훼손되고, 경작지가 줄어들고 있다. 2010년 국제 밀 가격이 크게 상승한 이유가 바로 기후변화 때문이다. 밀 생산 1위 국가인 중국이 계속되는 가뭄과 홍수로 밀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자 수출량을 줄였고, 또 다른 수출대국 러시아는 극단적인 가뭄의 영향으로 아예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이에 따라 2008년 밀 가격은 거의 공황상태에 가까운 변동폭을 나타냈다.
 
우리의 주식인 쌀 역시 마찬가지여서 2008년 쌀 생산 세계 2위 국가인 베트남이 이상기후에 의한 쌀 생산량 저하를 이유로 수출량을 10% 이상 줄였다. 그리고 쌀 생산 2위 국가인 인도는 생산량이 부족해 오히려 대체 작물인 밀을 수입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앞으로 식량문제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암울하다. 기온이 점점 상승하면 영구동토(일년 내내 항상 얼어있는 땅)가 녹으면서 약간의 경작지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인류의 곡창지대인 열대지방에서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전체적으로 생산량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국제쌀연구소(IRRI)에 따르면 온도가 1℃ 상승하면 쌀수량이 10%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21세기 최대 6.4℃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니, 단순 환산해도 쌀 생산량이 64%나 줄어든다는 의미다. 또 환경 적응력이 강한 해충이 창궐하면서 작물 피해가 심각해질 전망이다. 토양침식이 증가하면서 재배면적이 감소하고, 온도가 크게 오르면 가축폐사가 증가해 육류와 유제품 역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일련의 전망들은 ‘기후변화와 식량’ 사이의 견고한 유착 관계를 증빙하는 서류와도 같다. 기후변화의 가장 위협적인 무기는 식량 문제이고, 식량가격이나 공급 부족에 따른 문제에 접근하려면 장기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이 선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취약하고, 그 중에서도 영세한 농민들은 사실상 자연재해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해 생계형 농업마저도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90년부터 2002년까지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인구는 1억 4천만 명이나 증가했다. 주된 원인은 인구 증가로 볼 수 있지만, 낮은 토지의 질과 가뭄으로 인한 수자원 부족, 빠른 사막화가 이를 거들고 있다. 영국 정부보고서에 따르면 각종 농업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등으로 2080년까지 현재 10억 명 수준인 기아 인구가 60% 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가난한 나라의 땅과 식량을 빼앗는 ‘바이오연료’ 

▲ 만평: 바이오연료와 식량   
 © 출처:
http://scottthong.files.wordpress.com/2008/04/biofuelgauge.jpg    
 
또 다른 식량난의 원인인 바이오연료 문제는 더 심각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2020년 바이오연료의 생산량이 2천억 리터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는데, 2005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식량이 아닌 대체 작물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문제가 잦아들 것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 각국 정책을 분석한 유엔식량농업기구는 2020년 에탄올 생산원료 중 잡곡과 사탕수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44%와 36%라고 밝혀, 5분의 4가 ‘식용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오연료의 재료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식량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바이오연료는 식량가격 폭등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곡물가격이 상승하는 영향으로 일반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의 주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왕왕 옥수수나 사탕수수와 같은 작물을 식량으로 할 것인지, 자동차 연료로 활용할 것인지를 논쟁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런 논쟁과는 상관없이 정작 바이오연료를 경작하고 있는 지역은 대부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저소득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바이오연료가 이들 국가의 사람들로부터 농토와 식량을 앗아가고 있는 셈이다.
 
선진국의 바이오연료 사업이 저소득 국가의 땅과 식량을 빼앗고 있다는 얘기에 대해, 침소봉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 이러한 소식은 어떤가? 전지구적인 식량폭동이 한참이던 2008년 11월, 미국의 타임지가 전한 흥미로운 뉴스다.
 
한국의 대우로지스틱스가 아프리카 남부 인도양에 위치한 최빈국 마다가스카르의 ‘농지’(farmland)를 99년간 임차했다는 것이다. 그 면적이 320만 에이커(12,950km)에 달하는데, 서울 전체 면적의 21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이중 절반은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팜오일을 심을 계획이고, 나머지 절반의 땅엔 한국의 식량안보를 위해 옥수수를 식재할 계획이라고 한다.
 
1898년 중국 땅이었던 홍콩을 99년간 임차하는 협정을 맺었던 당시의 영국을 우리는 무어라고 기억하고 있나. 바로 ‘제국주의’다.  (이진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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