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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라졌다
<꽃을 던지고 싶다> 3. 헛된 바람뿐인 질문들 
 
[연재: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 3] <일다> www.ildaro.com
 
여덟 살 때 살던 집은 마당에 펌프가 있는 수도가 있었고, 그 수도를 주변으로 우리 집까지 총 네 집이 마당을 함께 쓰며 생활했다. 항상 아침저녁으로 마당을 함께 쓰는 집이었기에 우리는 옆집의 상황들을 잘 알고 있었다. 마당을 지나 대문을 나서면 커다란 도로변이 있었다.

 
엄마는 그 집의 길가에 있는 가게를 얻어 ‘선화정’이라는 술집을 시작하셨다. 예쁜 언니들이 있었고, 그 언니들이 어린 나에게 담배심부름도 시키고 예뻐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언니들이 피던 담배를 그 집에 살던 나의 또래들과 몰래 피웠던 기억. 어찌 되었건, 장사가 잘 되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짧게나마 배고프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기억으로 그 곳이 성매매 업소였는지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짧은 평온이 잠시 가능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어느 날 빚쟁이들이 가게에 몰려와서 가게를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이유인즉슨 ‘아빠’라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빚을 내어 일하던 언니와 살림을 차렸고, 그 빚을 갚지 않았다는 거였다. 빚쟁이들의 행패가 한동안 지속되었고, 그 후로 가게는 문을 닫게 되었다.
 
엄마가 몇 일간 머리에 띠를 두르고 방에 누워계셨다. 나는 엄마에게 어떠한 말도 건넬 수 없었지만, 아빠가 없는 그 상태가 차라리 평온하다고 느꼈다. 아빠와 바람난 그 여자가 아빠와 산다는 것은 나에게 다행이었다. 아빠라는 사람이 집에서 사라져서 엄마가 더는 폭력을 당하지 않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랬다.
 
며칠이 지나고 엄마는 고깃국에 따스한 밥을 우리에게 해주고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가셨다. 사라져야 하는 가부장 대신에 엄마는 그렇게 사라졌다.
 
엄마가 사라지자 가부장은 갑자기 성실한 가장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쌀도 사오고, 지독히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을 그제야 가장 노릇을 하려고 들었다. 속으로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상황에서 쩔쩔매는 가부장이 고소하기도 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내가 밥을 하고, 도시락조차 싸가지고 다니지 못했지만, 엄마가 돌아오지 않기를 열심히 기도했다.
 
일 년 가까이 그렇게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저녁을 준비하던 언니가 칼로 손가락을 절단하는 사고가 생겼고, 응급실에 가서 봉합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아빠는 엄마를 찾으러 간다고 했고, 나는 엄마에게 서툰 글씨를 꾹꾹 눌러서 편지를 썼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한다고. 엄마가 없어서 너무 슬프고, 언니도 다치게 되었다고. 엄마와 살고 싶다’고 썼던 것 같다. 나의 의도는 아빠라는 사람이 아니라 엄마랑 살고 싶은 것이었지만, 세상이 어디 의도대로 되는 것이 있었던가!
 
엄마의 독립은, 자식을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엄마의 지독한 모성애 때문에 얼마 가지 못했다. 시골에서 서울로 독립한 엄마를 따라 나이가 어린 오빠와 나는 서울로 먼저 전학을 하게 되었고, 가해자와도 다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나의 편지 때문이었을까?
 
내가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그때 엄마에게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엄마의 독립은 가능했을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그때의 상황들을 내 탓으로 돌리며 후회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그때 내가 편지를 쓰지 않았고, 엄마가 내려와서 나를 데리고 서울로 오지 않았다면, 내가 그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나에게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알 수 없는 질문들… 그리고 알 수 없는 대답들… 헛된 바람뿐인 질문들을 나지막이 되뇌어본다.   (너울)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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