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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여성의 성매매 유입 막으려면?
<일다> 경찰도, 보호관도, 사회도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청소년 성매매’ 현실을 들여다보는 연재 두번째. <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 다른 이야기>(이후)의 저자 김고연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가 성매매 경험이 있는 십대여성들과 만나온 이야기를 5회 기고합니다. <일다> www.ildaro.com
 
십대의 가출, ‘비정상 가정’을 탓하는 사회
 
1년 2개월 동안 서울위기청소년교육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성장 캠프’에 참여할 십대 여성을 모으는 일이었다. “성매매 재유입 방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줄여 부르는 ‘성장 캠프’의 정원은 여덟 명이었다. 주로 경찰의 함정 수사에 적발된 십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참가자를 모집했다. 그런데 십대 여성들이 경찰에 가짜 전화번호를 알려 주거나, 적발된 뒤 전화를 해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연락을 취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어렵게 연락이 된 십대 여성이 캠프에 참여하겠다고 하더라도, 캠프 당일에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센터에서는 ‘새날을여는청소녀쉼터’를 비롯한 쉼터 입소자들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교육에 포함시켰다. 이 아이들 덕분에 겨우 정원을 채울 수 있었다.
 
‘고위험군’이란, 성매매에 유입될 가능성이 높은 십대 여성을 뜻한다. 쉼터에 있는 아이들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가출’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출을 한 십대들이 모두 성매매에 유입되는 건 아니지만, 둘 사이의 연관성은 매우 높다. 쉼터 활동가들뿐 아니라 많은 학술연구들도 가출과 성매매의 밀접한 관계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십대 성매매’가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가출을 선택한 십대 여성이나, 그 십대 여성이 속한 가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 여론은 결과적으로 소위 말하는 ‘비정상 가정’과 그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 성매매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캠프 참가자를 모집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서, 나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을 종종 만났다. 그 중에는 곧 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아이도 있었다. 아버지가 유명 사립대 교수인 아이도 있었다. 이 아이들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어떻게 가출이나 성매매를 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원인이 ‘가정의 빈곤’ 또는 ‘해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모도 자녀들을 방임하고 학대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거나 이혼을 한 부모도 얼마든지 자녀들을 잘 돌볼 수 있다. 오히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비정상 가족’에 대한 편견이, 십대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는 원인을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특히 내가 만난 십대 여성들 가운데는 딱히 집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아 가출을 하다가, 그 가출이 반복되면서 집 밖의 삶이 일상이 된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이 아이들은 집 밖에서 접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들에 매료되어, 거리 생활의 끊임없는 불확실성과 타협하며 나름의 생존 방법들을 터득해 생활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가출의 이유는 가정이 아닌 ‘가정 밖’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 안전망’의 부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정이 아닌 가정 밖의 문제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십대 여성들이 어떤 이유로 가출을 하건 간에, 집 밖을 나옴과 동시에 다양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다.
 
십대 여성들은 나이가 어리고 또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대표적 약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나이 어린 여자’가 가진 자원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구나 십대 여성에 대한 보살핌의 책임을 가정에만 전가하는 우리 사회에서, 십대 여성들은 가출과 동시에 경제, 관계, 학력, 주거 등 그나마 있던 필수적인 자원까지 상실하게 된다.
 
여기에 가출한 십대 여성들의 취약한 상황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이들의 처지는 더욱 열악해진다. 십대 여성들이 집 밖에서 만나는 어른들이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주면서 임금 체불까지 일삼는 고용주, 또는 성구매 남성들이다. 십대 여성들 사이에 어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십대 여성들은 처지가 비슷한 자기들끼리 모여 그 안에서 가능한 생존 방식과 규범을 만들게 된다. 가출한 십대 여성들은 사회 안전망과 자원이 부재한 상황에서 생존을 전략으로 ‘또래 집단’을 구성한다. 그러나 또래집단은 십대 여성들에게 당장의 안식처는 돼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십대 여성들을 사회에서 더 유리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십대 성매매는 어쩌면 십대 여성들에게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을 제공해 주지 못한 사회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
 
‘피해자’ 아닌 ‘피의자’ 취급받는 아이들
 
사회 안전망의 부재와 사회적 배제로 인해 성매매에 내몰린 십대 여성들이 다시 사회와 접속하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경찰 적발’이라는 건 역설적이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만난 십대 여성 대부분은 주로 경찰에 적발된 경험이 있었다. 아마도 주로 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경찰에 적발된 경험을 물으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이 ‘범죄자’ 취급을 받아 불쾌했다고 이야기한다.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들은 분명 ‘피해자’로 규정되어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게 돌아간다.
 
형사가 함정 수사를 하는 이유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성사되는 청소년 성매매의 특성상 성구매 남성을 적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대 여성을 먼저 적발해, 그들을 통해 성구매 남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십대 여성들에게 남성들과의 ‘공모’를 의심하는 언행을 일삼거나 고압적인 태도로 따져 묻기 때문에, 십대 여성들은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로 조사받고 있다고 느낀다.
 
십대 여성들은 자신이 처벌받을까 두려워 경찰 조사에 협조하기를 꺼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형사들은 성구매 남성을 적발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십대 여성들을 성구매 남성을 적발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일부 형사들은, 조사가 끝나면 이들을 다시 거리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내가 만난 십대 가운데 이슬(20)은 조사가 끝났다며, 차가 끊긴 한밤중에 경찰서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적도 있다고 분개했다. 십대 여성들은 때로 형사들이 자신을 그저 ‘실적’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느낀다.
 
보호관찰소가 성매매를 오히려 부추기는 격
 
경찰 조사를 받은 십대 여성들 중 일부는 ‘보호’라는 이름의 ‘처벌’을 받는다. 바로 ‘보호 처분’이다. 보호 처분에는 보호 관찰, 야간 외출 금지, 수강 명령, 보호 시설 위탁 처분 등이 포함되는데, 이는 절도나 폭력 등을 저지른 십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내려지는 판결이다. 한국의 법률이 ‘피해자’에게 처벌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일단 보호 관찰소에 가면 십대 여성들은 다른 범죄와 연루된 십대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성매매를 했다는 이유로 인격 모독과 언어 성폭력 등 2차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하나(19세)와 슬아(18세)는 포주 밑에서 1년 정도 성매매를 하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재판에서 보호관찰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보호 관찰소에서 자신들이 받은 건 ‘보호’가 아니라 또 다른 ‘가해’였다고 털어놓았다.
 
보호 관찰소 안에 하나와 슬아가 성매매를 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일부 관찰관들은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뜨렸다고 한다. 심지어 하나와 슬아에게 “야, 너네 그거 하면 좋아?” “야, 지금도 하냐? 하고 싶지 않아?” 등의 성적 모욕감을 불러일으키는 농담과 질문을 하고, 하나와 슬아가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기도 했다.
 
이렇게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면서 하나와 슬아는 무기력했다. 처음에는 ‘보호 관찰관이라는 사람들이 설마’하는 생각 때문에, 그들의 언행을 장난으로 생각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인권침해가 확실하다는 판단이 서고 난 뒤에도, 보호 관찰관이라는 지위와 그들이 가진 권력 때문에 항의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하나와 슬아는 이러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보호 관찰관이 자신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매매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자발적 선택’이라는 낙인이 악순환 가져와
 
경찰과 보호 관찰관은 세상에서 유리된 십대 여성들이 다시 세상과 접속하는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십대 여성은 오히려 이 과정에서 피의자 대우를 받거나, 인격 모독을 당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성매매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된 후,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 ‘피해’ 여성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됐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범죄자로 보고 있다. 성매매 여성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해당 여성에게 있다는 견해다.
 
특히 포주 없이 개인형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성매매 특별법에서조차 피해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청소년 성매매의 많은 경우가 포주 없이 개인적으로 행해진다는 이유로 십대 여성들이 비난 받는 건 이 때문이다. 평소에는 십대의 판단력 부족을 운운하는 사람들도, 이때만은 십대 여성들의 선택이 그들이 미성숙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이 십대 여성들을 피해자로 자리매김하는 ‘공식적 견해’를 대변한다면, 십대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는 과정에서 또는 성매매를 했다는 이유로 받게 되는 위와 같은 사회적 낙인은 ‘비공식적 견해’를 대변한다. 그리고 경찰 조사나 보호 관찰 같은 법 집행 과정에서, 때로는 비공식적 견해가 공식적 견해를 압도하기도 한다.
 
청소년 성매매는 십대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십대 여성들에게 ‘자발적 선택’이라는 낙인을 찍고 이들을 배제함으로써, 사회는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그러한 인식이 십대 여성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성찰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 때문에 십대 여성들의 성매매 재유입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김고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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