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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사회건강연구소장 정진주 박사를 만나다 
 
여성의 건강권, 여성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 의료인 등을 만나 <젠더와 건강> 문제를 생각해보는 연재기사가 시작됩니다. 필자 박은지님은 <신체활동과 여성건강 이야기>를 연재한 바 있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돌봄 노동자의 건강은 누가 돌보나?’

2월에는 여성노동자의 건강 문제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책이 두 권 발간된다. <돌봄 노동자는 누가 돌봐주나?>와 <반쪽의 과학: 숨겨진 워킹우먼의 건강문제>가 그것이다. 두 책의 발간에는 사회과학연구소 정진주 소장이 참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학과 보건학, 전혀 달라 보이는 두 학문 사이를 넘나들며 창조적인 방식으로 노동과 여성건강 연구를 하는 정진주 박사를 만났다.
 
▲ 사회건강연구소 정진주 소장이 공저자로 참여한 책 <돌봄노동자는 누가 돌봐주나?>(한울, 2012)  

 
정진주 소장이 공저로 참여한 <돌봄 노동자는 누가 돌봐주나?>는 사회복지학, 문화정치학, 법학, 의학, 보건학 등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이 돌봄 노동과 돌봄 노동자에 대해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쓴 책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고, 누구나 늙고, 병들고,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시기가 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돌봄 노동은 너무 저평가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간병인, 가사도우미들은 격무에 시달리느라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데 저임금에,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여전히 많은 돌봄 노동자들은 자신을 마치 하인이나 노예처럼 대하는 고용주들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실 이들은 고용하는 사람 본인이 해야 될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돌봄 노동을 매우 저평가한다. 본인이 감당하기 힘든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맡기는 의미로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다.
 
“요양보호사라고 치매나 중풍 같은 질환 때문에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들의 건강을 관리해주고, 이들에 관련된 가사노동을 해주는 직업이 있어요. 요양보호사들은 자기들을 스스로 ‘국가공인 파출부’라고 말해요. 요양보호사가 되려면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국가에서 자격증을 주는데 이들을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고, 부려먹으니 자기들끼리 자조적으로 국가에서 인정한 파출부라고 하는 거죠.”
 
책에는 이외에도 돌봄 노동자들이 처한 여러 가지 사례들과 관련 이론, 그리고 대안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여성과 남성, 노동환경의 차이에 주목하라’
 
또 다른 책 <반쪽의 과학: 숨겨진 워킹우먼의 건강문제>는 카렌 메싱 교수의 책을 정진주 박사가 번역한 것으로 노동환경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는지를 고발한다.
 
“일하다 병이 나면 산재보험 신청을 해서 요양을 받거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법이 있지만 질병판정위원회에서 산재보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산재의 근거가 있어야 되죠. 이 근거가 되는 것이 연구결과들이거든요. 가령 유통업에 종사하는 사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위험물질을 다루고, 어떤 작업 동작을 하기 때문에 몸에 안 좋은지 연구자들이 조사를 할 때 여성들이 하고 있는 일, 여성들이 처한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그 동안 관심도 없었고, 연구도 안 했어요. 그러다보니 남성들의 일, 남성들의 건강문제를 여성에게 그대로 적용을 하는 문제가 발생됐죠.”
 
그녀는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같은 직업이라고 해도 여자와 남자가 하는 일이 다른 경우가 많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보통 생산직이다, 판매직이다 해서 같은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은 같은 건강요인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을 해요. 그런데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도 여성과 남성은 하는 일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어요. 예를 들면 청소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여자들은 구석구석 닦는 일을 주로 하고, 남자들은 기계로 막 하고 다녀요.”
 
하지만 이런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면 의사나 보건학자들로부터 말도 안 된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전문가의 경험과 지식에 너무 의존하는 사회가 됐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일하고 있는 당사자인)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래서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지식,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고, 거기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제대로 된 방향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들의 일과 일상을 알아보고, 면접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의학자들은 이런 일들이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과학은 숫자로 나와야 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있기 때문에 공격이 정말 심했죠. 예전에 유명한 모 교수가 나한테 뭐라고 했냐면 ‘조선소에 가본 적이 있느냐. 거기서 용접하는 사람들이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는데 나는 그들이 하는 일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하는데 차이가 있는 것이 말이 되나.’ 이런 공격을 했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여자는 아무리 연구자라고 해도 조선소에 들어오는 것을 꺼려했다고 한다. 여자 중에서는 의사만이 건강검진 목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의사는 자기는 건강검진 한다고 들어갈 수 있었던 곳을 나는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을 알고, 내가 들어가서 볼 수 없는 직업을 예로 드는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나를 공격했던 거죠.”
 
답답한 마음에 그녀는 정말 여자 용접사와 남자 용접사가 하는 일이 같은지 알아봤다고 했다.
 
“희망버스 김진숙씨가 여자 용접사였잖아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여자 용접사가 얼마 없긴 해도 남자들과는 일이 다른 점이 있다는 거예요. 용접을 할 때 길게 붙여야 되는 것은 남자들이 더 많이 하고, 구멍을 메우는 땜빵 작업은 여자들이 더 많이 한다는 거였죠.”
 
비정규직 여성의 건강 연구로 주목받기까지
 
▲ 정진주 박사는 한국사회에서 노동환경과 건강, 특히 여성건강에 대해 사회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분야의 개척자이다.     

 
정진주 박사를 만나기 전, 노동환경과 건강 특히 여성건강에 관해 사회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이 분야의 개척자라고 해서 처음에 깐깐한 학자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나는 마치 큰 언니를 만난 듯 포근하고 정겨운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흔히 사회가 발전했다고 하는데, 그 발전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게 과연 무엇일까, 그게 제가 가진 질문이었어요.”
 
대학 때부터 쭉 사회학을 전공했다는 정 박사는 공부를 하면서 과연 ‘발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발전과 개발, 원조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만 당시는 논의가 시작되는 초창기였다고.
 
“그래서 구로공단 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인생사(life history)를 봤어요.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당시 일할 때까지. 그것이 바로 한국사회 발전과 개인의 인생사가 쭉 같이 가는 거잖아요. 그걸 쭉 보면서 발전 속에서 이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이었는가를 분석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발전의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봤죠.”
 
1988년 서울에서는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그녀는 캐나다로 떠났다. 처음에는 유학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사람을 대하는 법부터 시작해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외쳤던 자유, 평등이라는 개념이 현실화되면 어떤 것인지, 나는 그걸 캐나다에서 배웠어요.”
 
당시 한국은 일하는 사람의 건강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하는 학문분야가 없었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사회과학자와 의학자가 함께 노동자의 건강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경험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통합적인 연구를 하는 법을 배우고 십 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한국의 연구 환경은 생각보다 척박했다.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마인드만 가지고 왔는데 여기는 아무 것도 안 되어 있는 상태더라고요. 처음엔 몰랐어요.”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그녀의 존재를 알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있을 때 수행한 연구를 통해서였다.
 
“비정규직 여성의 건강이 정규직 남성, 정규직 여성, 비정규직 남성의 건강보다 훨씬 좋지 않다는 것을 밝혀내는 연구를 했어요. 그러려면 그들의 직무 스트레스를 측정해야 하는데 외국의 경우에는 이걸 측정하는 도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그것들을 한국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죠.”
 
한국형 측정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면접을 하는 그녀를 보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아니 무슨 면접이 연구야? 왜 그렇게 넓은 걸 봐야 돼?’ 이랬던 의사들의 생각이 다 깨진 거죠.”
 
두 번에 걸친 수술 후 갱년기 건강에 관심 가지게 돼
 
“작년에 갱년기 건강에 관해 전국 7곳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어요. 그때 제 계획은 신체적인 변화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십 세 전후의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내 주변을 어떻게 봐야하는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었어요. 그랬더니 다들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갱년기 건강에 대한 대부분의 강의가 호르몬의 변화나 퇴행성 질환에 맞춰져온 것에 반해 그녀는 백세 시대의 중간인 오십 세 전후의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되는지에 초점을 맞춰 강의를 진행했다.
 
“사실 이런 관점이 절실하게 다가왔던 건 제가 수술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온몸이 완전히 가라앉았었고, 제가 인생 전반에 걸쳐 세워놨던 계획들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그 공포심, 두려움에 힘들었죠.”
 
오랜 기간 동안 연구소 생활을 하면서 무척이나 열심히 일해 온 그녀를 무너뜨린 것은 두 번에 걸친 수술이었다.
 
“2003년도에 몸이 하도 안 좋아서 병원에 가보니 자궁 쪽에 염증이 너무 심해서 터지기 직전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자궁하고, 난소 하나를 떼고, 나머지 한 개는 반만 남겨놨었어요. 당시 나이가 마흔 한두 살이었거든요. 이렇게 젊은데 다 떼면 힘들다고 해서 겨우 반만 남겨놨는데 2년 후에 재발이 됐어요.
 
남아있는 반쪽의 난소를 잃고 싶지 않은 절실한 마음에 한의원에도 가보고,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은 다 써봤다고.
 
“나중에는 걷는 것도 힘들어서 병원에 갔더니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결국 절제수술을 했죠. 당시 두 달 병가를 내고, 복직을 했는데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호르몬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기관을 다 절제했으니....... 몸이 옛날 몸이 아닌 거죠.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1년 정도 휴직을 했어요.”
 
사십 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두 번의 수술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황폐화 됐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자기 몸에는 맹장까지 합해서 기관이 4개가 없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이었을까. 몸과 마음이 바닥을 치고, 우울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을 때 동생이 춤을 권유했다고 한다.
 
“언니는 춤을 좋아하니까 한 번 해보라고 하면서 동생이 동호회도 만들어줬어요. 그때 살사, 스윙, 차차차 등등을 배웠는데 다 재밌더라고요. 거의 2년을 추면서 우울에서 많이 벗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춤을 추면 뭔가 나를 확 표현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춤과 동시에 종교도 새로 만났어요. 원불교, 마음공부를 하는 곳이에요.”
 
건강과 행복은 ‘놀듯이 일할 때’ 온다
 
그렇게 인생의 바닥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무너졌던 경험을 한 후, 진정한 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님 시대도 그렇고, 지금도 우리 사회는 생산적인 인간만이 좋은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부단히 바쁘고, 부단히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만이 제 구실을 한다고 생각하죠. 이것이 주류 사회의 기본 원리거든요. 하지만 거꾸로 뒤집어보면 무언가를 많이 하고, 바쁜 것이 꼭 좋은 게 아니에요.”
 
바쁘게 회사나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늘 조급했다. ‘나는 왜 저들처럼 바쁘게 살고 있지 않을까’ 괜한 죄책감까지 들 정도였다. 진로에 대한 고민과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늘 나를 괴롭혔다. 이런 메마른 마음에 내리는 촉촉한 위안과 같은 말들을 그녀는 계속 이어나갔다.
 
“며칠 전에 어떤 독일인이 쓴 휴식에 관한 책을 읽고 참 공감을 했는데 거기서 작가가 이런 말을 해요. ‘나와 시간의 일체감’이 있어야 된다고. 지금 놀고 있던지, 일하고 있던지 그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 사회가 아닌 내 스스로가 시간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어야 되요."
 
삶의 모든 순간에서 그 시간의 주인이 되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 이런 능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키워내야 된다고 정진주 박사는 말한다.
 
“노는 것처럼 일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가장 좋은 에너지가 나올 수 있어요. 하지만 현재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 내용이 바뀌어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진정으로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어요.”
 
“사회적인 건강 연구와 교육 계속할 터”
 
▲ 정진주 박사가 번역한 <반쪽의 과학:숨겨진 워킹우먼의 건강문제>(한울, 2012)  사회 구성원들과 공유해야 할 책을 번역하는 작업도 정 박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중 하나이다.  

 
긴 세월동안 한결같이 노동환경과 건강에 대해 치열히 고민해온 그녀는 자신이 지향하는 교육과 연구를 꾸준히 할 수 있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 조직을 만들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사실 조직과 인재들은 널려 있어요. 단체도 많고, 인재도 많죠. 하지만 이들을 모아서 같이 일할 수 있게끔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없더군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질병 위주가 아니라 사회적인 것과 건강을 연결하면서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육보다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서로 같이 하는 참여형 교육을 하려고 해요. 그러려면 올해부터는 뭔가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조직의 형태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죠."
 
그리고 그녀는 우리나라의 권위적이고 성과주의적인 교수사회에도 일침을 가했다.
 
“우리나라 대학은 제자를 도구화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학생들이 나중에 저런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하지 않고,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봤어요.”
 
성과주의에 물든 교수들은 성과로 별로 인정되지 않고, 힘은 많이 드는 번역일 같은 것은 기피한다. 그녀는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어떤 분야에서 정말 그보다 더 잘 쓸 순 없다고 생각되는 책들이 있어요. 이 책들을 번역해서 공유해야 하는데 이 작업을 돈 없는 젊은이들이 하겠어요, 돈 많이 버는 교수들이 성과도 되지 않는데 하겠어요? 여기서 공백이 생겨요. 나는 이런 빈 공간들을 채우는 일을 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어요.”
 
그녀는 지금 하고 있는 사회건강연구소가 어떤 형태로 기반을 잡던지 ‘사회적인 건강, 젠더와 건강’ 이 둘을 양축으로 한 교육과 연구를 계속해서 해나갈 것이라 한다.
 
“조직의 형태가 무엇이 되든지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후원도 받고, 같이 인재도 양성하는 일들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일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다 모여라, 다 모여! 우리 서로서로 밀어주자, 같이 좀 잘 살아보자, 이런 거죠. 하하”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온 학문과 삶의 집약체가 될 그 공간의 초석은 어떤 모습일까? 겉모습만 휘황찬란한 숫자의 성이 아닌 맑은 샘 품은 푸른 숲이 아닐까? 따뜻하게 건네는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던 그녀 안의 고요하고 단단한 내공처럼 말이다.  (박은지)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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