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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 진단(1) 장애인 생활시설의 문제, 해법은?
  
영화 <도가니>가 가히 ‘열풍’이라 불릴 만큼 주목을 받으면서,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단지 몇몇 ‘나쁜 선생님’들을 처벌하고 나면 끝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일다>에서는 인화학교 사건을 가능케 했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근원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장애인 생활시설과 관련법의 문제,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관한 문제, 그리고 장애인성폭력 관련법과 적용의 문제를 짚어보며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첫 번째 기사는 장애인보호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단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효정 활동가의 글입니다. [편집자 주] 

장애인 생활시설의 고질적인 문제, 그 해법은?

광주 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청각장애아동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 중 한 장면.  
 
“<도가니>의 배경이 됐던 인화학교 실제 사건은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잔인하다.”
 
원작자인 공지영씨의 이야기처럼, 인화학교에서는 더 끔찍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10월 17일 오후 광주인화학교 대책위의 기자회견 자리에서 전 교사 김영일씨는 교사로 재직 중이었던 1964년 10월께 고아였던 남자아이(7세 추정)를 교감이 오랫동안 굶기고 때려 숨지게 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김영일씨는 “아이가 숨지자 가마니에 싸 나와 교감, 다른 교사 1명이 함께 당시 광주 동구 학동에서 7km 정도 떨어진 무등산 기슭에 묻었다"고 증언했다. 또 "6개월 후에는 다른 여자아이(6세 추정)에게 오랫동안 방에 가두고 밥을 거의 주지 않아 아이가 벽지를 뜯어 먹기도 했다"며 "아이를 보육하던 할머니가 아이를 떨어뜨려 숨지게 했고 역시 암매장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 때, 인화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소설과 영화 <도가니>를 통해 인화학교 사건이 다시 조명되고 있지만, 사실 이미 지난 2005년 인화학교의 학생, 부모, 교사, 시민단체에서는 인화학교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투쟁을 시작했다.
 
대책위는 두 달여에 걸쳐 등교를 거부하며 시청 앞에서 천막수업을 열고, 성폭력 가해 교사의 처벌을 요구하며 소송을 진행했다. 또한 인화학교 인가취소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지역사무소를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사회복지법인의 투명 운영을 위해 공공성확보와 ‘공익이사제’를 골자로 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투쟁도 진행되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인화학교에 대한 진정을 접수하고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실태조사에서 당시의 학생들이 증언한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본다. 이것은 교사에 의해 일어났던 일들이다.
 
“pc에서 다운받은 야한 영화를 같이 보자고 했다. 더러운 느낌이었다.”
“갑자기 이불속으로 들어와 키스하고 돈 3만원을 줬다.”
“엄마가 좋아? 선생님이 좋아? 물은 후 엄마가 좋다고 하니까, 선생님을 더 좋아해야지 하면서 강제로 키스하고… 키스 방법을 알려준다고 말하며, 혀를 넣으면 더 맛있다고 했다.”
“여러 학생들이 있는 가운데서도 키스하고 엉덩이를 만졌다”
 
인권위원회는 실태조사 후 결정문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들을 검찰에 고발하고 ▲우석재단의 이사진을 해임하고 공익성과 전문성을 갖춘 이사진을 재구성할 것 ▲피해학생에 대한 성폭력 전문상담시스템을 갖출 것 ▲특수학교 교사들 중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비율을 높이고 교육권 확보를 위한 대책을 강구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사진이 몇 명 교체된 것 말고는 그 어느 곳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갔고, 소송은 기각되었고, 교사들 역시 학교로 돌아갔다. 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잠잠했던 과거로 모두를 데리고 가버렸다.
 
곳곳의 인화학교, 시설 안의 아우성은 계속되어 왔다

성람재단에서 지급되던 한 그릇 밥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안타깝게도 이것은 <도가니>의 인화학교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아니다. 인화학교의 우석재단 뿐 아니라 2003년 성실정신요양원과 은혜 사랑의집, 2005년 심신수양원과 바울선교원, 2006년 김포사랑의집과 성람재단, 2007년 전북영광의집, 2008년 석암재단, 2010년 전북사랑원 등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의 부정과 비리 그리고 인권침해는 잊을 만하면 발생하곤 했고,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족벌운영체제, 장애수당 갈취, 후원금 착복, (성)폭력 및 가혹행위, 시설거주인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의 부재와 방임/방치 등.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의 부정과 비리 그리고 인권침해 사건은 시설이 크든 작든, 어느 지역에 있든, 법인의 설립주체가 누구든 상관없이 비슷하게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시설에서는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아침, 밥을 먹고, 해가 채 지지 않은 저녁이면 잘 준비를 합니다. 하루 세끼, 이렇다 할 반찬도 없이 시어빠진 김치를 밥에 올려 입에 우겨 넣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의 전부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갇혀 사는 것이 억울하고, 이것은 사람이 사는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받아줄 곳도, 갈 곳도 없는 우리의 몸뚱이를 의지할 데는 시설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어빠진 김치조차 눈치 보며 먹어야 했지만, 그래도 이곳이 나의 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겪어 왔던 설움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돌봐주고 있다고 온갖 거드름과 생색을 내던 시설장이 우리 뒤에선 우리를 짐승마냥 돈으로 셈하고 있었음을. 우리의 삶이 서러우면 서러울수록, 고달프면 고달플수록 시설장은 더 많은 재산을 불려나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쌓아왔던 설움이 밀려옵니다. 더 이상은 갈 곳도, 나를 받아줄 곳도 없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지만, 온몸으로 저항을 해봅니다. 휠체어에 앉아 엉덩이가 저리도록 전단지를 나누고 서명을 받고,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시청, 구청에 쫒아 다니고 맨 몸으로 땅바닥을 기며 울부짖어도 봅니다. 삭발투쟁, 한겨울 천막농성도 해봅니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꺼리가 없을 만큼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이사장의 사위가 시설장이 되고 이사장이 되고 우리의 처지도, 시설도 여전합니다.>
 
이 글은 2007년과 2008년 석암재단의 비리척결을 위해 싸웠던,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생활했던 장애인들의 구술을 인용하여 작성한 글이다. 2008년 4월 20일 11명의 삭발투쟁식에서 낭독되었다.
 
이미 2006년, 2007년 사회복지법인의 비리척결 및 시설 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싸움이 진행되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보자고 사회복지사업법개정안을 냈지만 ‘제 2의 사학법이니’,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국회의원들 손에서 폐기되었다.
 
허망하게도 결국 시설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몸부림은 매번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일 년 두 세 차례 세상에 알려질 뿐이다. 그때마다 복지부와 지자체는 몰랐다는 듯 시설조사니 처벌이니 깜짝 쇼를 벌였고 사람들에게 시설의 장애인들은 잠깐 기억됐다가 잊혀졌다.
 
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말하는가?

▲ 방안에 변기가 놓인 한 시설의 모습. 변기 옆에서 사람들은 머리를 누이고 잠든다.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한국에서 장애인 시설 등의 사회복지시설은 한국전쟁 이후 부상자나 무연고자, 전쟁고아에 대한 생활대책이 절실히 필요할 때 외국의 원조단체나 선교단체들에 의존해 이루어졌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이런 원조단체들이 대부분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그들이 구호에 사용했던 자원 대다수는 지역의 토착유지들이나 종교 단체들에 이전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1970년에 사회복지사업법을 제정하여 사회복지법인 제도를 마련하고, 민간의 자원을 활용한 수용위주의 시설정책을 펴게 된다. 새롭게 설립된 사회복지법인들은 외국의 원조단체에서 이전된 자원을 통해 초기 재산을 출현시키고, 정부의 보조금과 민간의 후원금을 활용해 시설을 운영하면서도 사립학교 법인처럼 시설을 개인의 재산으로 축적해 나갔다.
 
그러나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들은 철저하게 관리의 대상으로서 시설에서 살아가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재단의 비리 등의 문제와 법인해체가 법원에서 패소한 주된 이유는 그동안의 사회적 기여와 초기재산출현의 공로 때문이었다.
 
한국의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에 대한 근거를 담고 있는 것이 사회복지사업법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시설도 변하겠지라고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몇 년 간의 문제제기로 2006년도와 다르게 최근 사회복지사업법은 시설거주인의 권리항목 및 장애인․보호자․시설종사자 등이 참여하는「인권지킴이단」설치 의무화를 담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시설 안에서의 인권과 도덕은 인화학교의 사건과 마찬가지로 시설 밖의 우리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갇힌 삶, 선택하지 못하는 삶, 운영하는 자와 관리 당하는 자가 존재하는 속에서 도가니의 민수처럼 억울함조차 분노로 표출하지 못한 채 억압되어 살고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인화학교와 마찬가지로 시설장과의 권력과 지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장애인 당사자, 보호자, 시설종사자 등이 참여하는 인권지킴이단이 얼마만큼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의 부정과 비리 그리고 인권침해 문제를 일부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인면수심의 한 개인이나 법인 및 시설의 단순범죄로 인식하여 ‘솎아내기식’으로 처방하는 것으로 ‘시설문제’는 결단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영화 <도가니>가 불러일으킨 여론에 힘입어 해체되었던 사회복지사업법대책위가 다시금 “광주인화학교사건해결과 사회복지사업법개정을 위한 도가니대책위원회(약칭 도가니대책위원회)”로 구성되었다. 도가니대책위원회는 사회복지사업법의 전면 개정을 근본적 해결책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개정을 추진 중인 사회복지사업법은 사회복지사업의 기본이념으로 생활시설거주서비스가 아닌 재가복지서비스를 우선으로 하는 원칙과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의 공공성을 명시 하고 있다.
 
또한 권리로서의 사회복지서비스 확보를 위해 사회복지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시설수용 등의 조치가 아닌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을 통해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복지사무전담기구를 설치하게 된다. 이와 함께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살 수 있도록 제반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인화학교와 같은 사건이 발생할 경우 즉각적으로 문제해결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학대, 방임, 유기 등 각종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차별금지와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권리옹호기관 및 긴급전화를 설치하는 것도 중요한 내용으로 포함된다.
 
시설운영의 공공성을 위해 족벌운영체제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도 마련된다. 이사정원 1/3 이상의 공익이사제 도입, 시설운영위원회의 구성과 기능 강화,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의 책임과 처벌 강화 등이 그 내용이다.
 
<도가니> 열품이 식어버린다면 

2006년부터 시작된 시설비리 척결과 사회복지법 개정을 위한 싸움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왔다.

 ‘도가니’를 보고 나왔을 때의 씁쓸함과 아림이 기억난다. 도가니 열풍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하고 슬펐던 까닭은 오랫동안의 노력에도 쉬 분노하지 않았던 사회, 분노하더라도 너무도 순식간에 식어버렸던 사람들의 마음을 수없이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덜컥 겁이 난다. 시설에 대한 관심과 시설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분노하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순식간에 식어버리면, 이 모든 무게는 또다시 시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될 테니까.
 
영화 <도가니>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복지부는 최근 시설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 시설조사에 인화학교의 우석재단과 같은 법인시설은 빠져있다. ‘쇼에 능숙한 복지부가 또다시 무마용 시설조사를 한다’라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과연 복지부는 얼마나 변화된 대책을 내놓을까.
 
한편에서는 2006년과 마찬가지로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자들이 모여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막겠다고 대책위를 꾸렸다.
 
5년 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반대하던 시설장들 500백여 명이 한 호텔에 모여 이런 말을 외쳤다. “너희가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시설 문 닫고 장애인들을 복지부 앞에 풀어놓겠다.”
 
너무나 끔찍하다. 그래서 <도가니>의 열풍이 쉽게 식지 않기를 바란다. 시설 내부 뿐 아니라 외부의 싸움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시설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시설에서의 삶이 오래될수록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신 욕구를 발현하지 못해 좋다 나쁘다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에는 자신의 삶의 비전이나 희망이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고 만다.
 
도가니의 민수처럼, 시설 안에서는 자신의 분노를 알아채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다. 어쩌면 시설의 사람들은 아주 오랜 시간 우리 모두가 분노할 바로 지금의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 모르겠다. 이번만큼은 지금 이 순간의 열망을 몰아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하고, 한국 사회의 모든 인화학교를 세상에 드러내야 할 때이다. 그래서 더 이상은 제2, 제3의 인화학교를 만들어 내지 않아야 한다.
 
석암재단의 비리 투쟁에 앞장섰던 한 장애인 활동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작성 - 효정)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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