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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6) : 영화 애정만세 
 
[일다 www.ildaro.com “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 연재는 다섯 명의 장애여성들이 다양한 ‘매체 읽기’를 통해 비장애인, 남성 중심의 주류 시각으로는 놓칠 수 있는 시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연애시장에서 20대 여성은 ‘갑(甲)’이다. 슬쩍 조건을 하나 걸자면, ‘예쁜’여성이어야 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비장애인 여성이어야(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직립보행”해야) 한다. 이 축복받은 여성들에겐 온갖 아첨과 선물과 충성이 따른다. 하지만 잘 나가던 20대의 예쁜 비장애여성도 언젠가는 40대가 되고, 잘 생긴 남자 연예인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만으로도 놀림거리가 된다.

 
영화 ‘애정만세’의 주인공 순임이 바로 ‘연애시장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면서 감히(!) 연하의 남성에게 깊은 호감을 가지게 된 중년여성’이다.
 
‘주책’ 꼬리표 붙는 순임의 사랑

▲ 부지영, 양익준 감독 <애정만세(2011)>
 
직장동료 준영에게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주고 싶어 그의 아파트 근처를 배회하는 순임의 모습은 10대 소녀처럼 수줍다. 기미도 있고 주름도 눈에 띄지만 학생처럼 체크무늬 미니스커트를 입고, 무한 구박을 받으면서도 딸에게 어그 부츠도 빌려 신었다. 누군가 사정을 알고 봤다면 “나잇값 좀 하시라”고 충고했으리라.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진지하다. 결국 그를 만나진 못했더라도.
 
영화 중 순임이 추억의 야유회 장소였던 산정호수를 다시 찾는 길에, 10대 남녀학생 두 명이 장난스럽게 몸싸움을 하며 얼음을 가지고 노는 장면이 나온다. 순임 역을 맡은 배우 서주희씨는 연극 <레이디 맥베스>로 유명해졌고,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는 씨름을 하다가 세르게이와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순임이 준영에게 설렘을 느낀 순간은 회사 야유회에서 그와 2인3각 달리기를 하던 때였다.
 
고상하고 순수한 연애감정도 결국 기저에는 ‘몸의 이끌림’이 있다. 중년 여성이 연하의 남성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도 물론 성적인 이유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도 같은 이유로 사랑에 빠졌다. 다만 후자의 커플이 어리고 예쁘니까 더 보기에 좋았겠지. 그러나 순임 같은 여성은 ‘주책’이란 꼬리표만 달기 십상이다.
 
딸이 일하는 편의점에 순임이 찾아가는 장면은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 <코파카바나>의 장면과도 매우 비슷하다. 철없는 엄마 취급 받으며 딸에겐 쩔쩔 매는 건 코파카바나의 ‘바부’도 똑같다. 그러나 바부는 자신의 성적 욕망에 충실했고 비슷한 또래이긴 하지만 섹스 파트너가 있었다. 그와 달리 순임은 준영에게 주려고 산 초콜릿도 제대로 전해주지 못하고 어설프게 마음을 들켜 그에게 비웃음만 산다.
 
장애여성에게 ‘연애’하자 요구하는 노년 남성들
 
40대 이상의 남성들도 연애시장에선 인기가 없어, 이름난 데이트 코스보단 단란한 주점에서 더욱 빈번히 발견되지만 태도만큼은 다른 것 같다. 지하철 내 휠체어전용석은 노약자석과 마주보게 되어있기에, 나와 내 몸과 휠체어는 언제나 아저씨/아주머니, 할머니/할아버지들께 구석구석 알뜰히 스캔을 받는다. 스캔만 받으면 다행이다. 아저씨나 할아버지들께 연락처를 달라는 요청도 받는다. 외진 곳까지 따라온 할아버지께 “정말 나한테 관심 없어요?”같은 말을 들으면 솔직히 무섭다. 내가 중, 노년층에게 어필하는 얼굴일까? 그런 것 같진 않다, 내 주위 장애여성들도 이런 일들을 심심찮게 겪는 걸 보면.
 
물론 누군가에게 애정과 사랑을 느끼는 데는 연령 제한이 없다. 장애, 인종, 연령 상관없이 누구나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을 선망한다. 장애여성인 나도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잘 생긴 남성이 좋다(잘 생긴 남성들은 내가 본인들을 좋아하게 될까 봐 경계한다).
 
하지만 나에게 연락처나 관심을 바라는 어르신들은 나를 선망한 다기 보단, 연애 혹은 섹스가 하고 싶은데 마땅한 다른 상대가 없어서 차선으로 나를 택했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분들처럼 등산클럽에서 비슷한 연배의 상대를 만나 ‘연애’를 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흔한 건 싫으신 모양이다.
 
우리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아 내 눈엔 그저 ‘어르신’일 뿐인 분들도 늘 “난 마음만큼은 아직도 20대인 남자야.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생각한다. 그게 사실인들, 빼어난 꽃중년이라거나 미노년이면 몰라도 모종의 권력 혹은 돈을 갖추지 않은 어르신을 젊은 여성(어르신들의 고정관념 속 연애상대인)이 연애대상으로 고려할 리 없다. 그래서 나름 눈높이를 낮춘 상대가 젊은 장애여성이다. 그들은 자신의 나이가 상대방의 장애로 상쇄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게다가 나 같은 중증장애여성은 물리적인 힘도 당신보다 약하다고 여길 테니 더욱 ‘쉽게’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중요한 건 마음이 아니라 태도

▲ 영화 <애정만세>의 순임과 준영 
 
중년 여성들에겐 “불굴의 며느리”같은 드라마가 대리만족이라도 줄 수 있지만, 중년 이상의 남성이 감정이입을 하며 볼 수 있는 연애 판타지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중년 이상의 남성도 본격적으로 “나도 20대 여성이 좋다!”고 선언한다면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게 될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분들도 안타깝다.
 
그러나 중요한 건 본인의 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다. 상대방의 기분이 어떻건 간에 지하철에서 처음 보는 장애 여성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아가씨, 어디까지 가?” 하고 묻는 남자 어르신들은 조심하고 수줍은 ‘애정만세’의 순임이나, 일본에서 온 배용준 팬클럽 아주머니들(꼭 배용준을 만나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오지는 않는다)과 태도 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구에 회자되는 쪽은 배용준 팬클럽 아주머니들이고, 이를 보는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밥은 누가 하냐”고 걱정한다. 마찬가지로 장애여성으로서, 나도 연애감정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반갑지 않은 선택의 대상이 될 뿐인 처지가 답답하다.
 
어떤 상황에 있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남성”의 지위, “비장애인”의 입장, “연령”의 고정관념 등 사회적 권력관계보다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아울러 이유 상관없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마음'도 존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쫄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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