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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박진창아가 만난 사람: 허은숙 제주옹기박물관 관장 
 

▲ 허은숙 제주옹기박물관 관장을 만나다.    © 일다-박진창아

 
어느 계절이나 그 빼어남이 남다르지만 제주의 이삼 월은 꽃잎 통째로 툭 떨어져도 한 시절 후회 없어 보이는 동백과, 지천으로 피어나도 스스로 고귀함을 누릴 줄 아는 수선화 향기로 가득하다.
 
하얀 모자를 눌러쓴 한라산이 유난히 멀리 보이는 제주의 서남쪽 중산간 마을 대정읍 구억리. 그곳에서 동백나무 밑둥처럼 듬직한 포스를 뿜어내는, 옹기 만드는 허은숙님을 만났다.
 
“개인적으로야 글 될만한 얘기가 없지만, 제주옹기를 알리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응해야죠.”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이 사람! “관장님, 어떤 사람인가요?”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말 수 없고 조용한 사람”이라는데, 옹기 얘기를 시작하자 야생 말이 목초지를 뛰어다니는 듯 거침이 없다. 단박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껴안은 뜨거운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제주옹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이 사람
 
제주옹기는 화산섬 제주의 질흙이 ‘굴대장’(가마를 만드는 사람), ‘건애장’(흙토림과 땔감을 챙기는 사람), ‘옹기대장’(옹기를 만드는 사람), ‘불대장’(불을 때서 구워내는 사람)의 고단한 수고로움을 거치며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가마에서 며칠을 구워지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질박한 색감과 불길이 만들어낸 무늬는 그냥 그대로의 제주자연을 닮았다.
 
돌가마는 ‘노랑굴’과 ‘검은굴’로 구분된다. 노랑굴은 제주섬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썼던 그릇을 구워내는 가마로, 옹기색깔이 노란색이나 적갈색을 띠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검은굴은 연기를 먹여 검은색 옹기를 생산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젓갈 류를 담그는 ‘멜첫단지’에서부터 쌀항(쌀항아리), 물항, 간장과 된장을 담그는 장항, 장펭(간장을 담는 병), 물허벅 등 그 쓰임새도 다양했다.
 

▲ 화산섬 제주의 질흙을 빚어 탄생하는 제주옹기는 1960년대 초까지 굉장한 부흥기를 누렸다. 허은숙님은 제주옹기의 부활을 꿈꾼다. 

 
“제주옹기가 60년대 초반만 해도 굉장한 부흥기였다고 하는데, 후반부터 새마을운동이 번지면서 제주옹기도 서서히 쇠퇴기를 맞이한 거죠.”
 
197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면 정말 그랬다. 아침마다 마을 확성기를 통해서 “잘살아보세”로 시작하는 새마을운동 노래를 들었다. 초가집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돼지가 살던 통시도 없어지고, 마을 안길이 시멘트로 매끈하게 포장되고, 부엌 찬장에는 옹기그릇이 없어지고 반짝이는 스텐레스 그릇이 자리를 차지했다. 아! 동네에서 심방(무당)일을 하던 삼촌은 일자리가 없어졌다. 민간신앙이 미신타파의 대상으로 청소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세상에 드러난 제주옹기, 그리고 제주옹기에 미친 이 여자! 그녀는 2007년 대정읍 신평리에 ‘껌은돌 공방’을 만들고, 2008년에는 사단법인 제주전통옹기전승보존회를, 그리고 2010년에 대정읍 구억리에 체험장을 갖춘 제주옹기박물관을 개관하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다.
 
환경디자인이라는 새로운 눈을 가지고, 다시 제주로
 
“지금은 제주대 산업디자인학부 대학원에서 도자기를 전공 중이지만, 처음부터 옹기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제주대 산업디자인학과 1회 입학생으로 제품디자인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환경디자인 쪽으로 관심이 많았죠.”
 
첫 입학생으로 맹숭맹숭 겉돌던 시기에, 생각이 트인 교수님을 만났다. 인생의 첫 멘토다. 허은숙님은 대학 3학년 때 서울 제일기획 프로모션 2팀이 대전엑스포 삼성관 프로젝트를 지휘하던 시기에, 스태프로 활동하며 사진촬영기법과 자료수집의 역할을 맡았다. 그 인연이 이어져 대기업 쪽 일을 하는 <환경디자인연구소>에 곧장 현장 투입이 되었다.
 
20대의 혈기왕성 청춘이 서울에서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려던 찰나였다.
 
“남동생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뇌사상태로 10년 동안 자리보전을 하고 있었어요. 엄마가 민간요법으로 최선을 다해 돌보고 있었는데….”
 
입사 인터뷰가 잡혀있던 그날, 동생을 하늘로 보냈다. 그 당시 엄마가 어떻게 되어버릴까 싶은 마음에 덜컥 제주도로 내려오고 말았다.
 

▲ 제주옹기박물관 허은숙 관장    © 일다-박진창아

 
그렇게 제주살이를 다시 시작하면서 그녀는 제주섬문화축제와 어리목눈꽃축제 기획에 참여했다. 지역축제를 기획하며 환경디자인 관점을 접목시키고자 했으나, 관공서의 벽은 너무 높고 답답하기만 했다.
 
“제주의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형을 이용한 기획! 그 안에서 제주적인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요. 단순하게 일회성 축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즘 말로 할 것 같으면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지속 가능한 축제를 생각했던 거죠.”
 
결국, 두 개의 축제는 지속되지 못했다. 환경디자인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시기였다. 그러나 허은숙님은 그 때에 먼저 눈과 귀가 열리며, 제주도적인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제주의 설화를 가지고 공원화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제가 어떤 일을 할 때 100% 이상을 해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제주설화를 찾아 도서관, 박물관을 찾아 다니고, 작품을 조형으로 표현하기 위해 (제주 흙을 가지고 조형 작업을 하려는 생각에서) 1년 반 정도 매진했죠.”
 
그러나 마스터플랜이 다 끝난 상황에서, 프로젝트는 어긋나버렸고 마음에 상처만 크게 남았다. 두 번 다시 제주에 돌아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정처 없이 20여 일을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마음에 매서운 북동풍이 드나들던 시간이었다.
 
“허은숙님은 참 센 사람” 제주 흙을 닮은 그녀
 

“그 즈음 제주도예촌 촌장님과 인연이 닿아, 1999년 11월에 제주도예촌으로 들어가게 됐지요. 제주 흙으로 조형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죠. 남자동료와 둘이서 가시덤불 장소를 골갱이로 일궈 마당을 만들고, 쓰레기 치우기를 한 달이나 했어요. 매일 둘이서 풀 베며 힘들었지만, 괴롭기보다는 오히려 신명이 났죠.”
 
제주옹기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촌장님의 마인드에 동참하며, 서서히 배움바치(전수자)로 자리매김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10년 세월을 보내는 사이, 주변에서 ‘허는 전상머리(하는 꼴 좀) 보라! 결혼이라도 하던지’ 라며 혀를 차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에게 세상은 종종 불친절하고 심술궂기도 다반사이지 않던가.
 

▲ 제주옹기박물관은 지역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옹기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근본과 뿌리가 되어준 곳을 나왔던 그때를 돌이켜보면, 스스로 불가마 속으로 들어가 더 뜨겁게 혹독하게 자신을, 스스로의 신념을, 그리고 미래를 구워내던 시간이었다. 그녀는 많은 사연 끝에, 동료들과 함께 신평리에 ‘껌은돌 공방’을 만들었다.
 
“‘껌은돌’이라고 정할 때 (이름이) 너무 쎄다고들 했는데… 저는 딛고 일어서든지, 밟혀 들어가던지 둘 중 하나라는 마음이었죠. 신평리는 제주옹기의 출발점이고, 무릉리, 고산리 마을에서 점토가 대량으로 나오지요. 옹기를 만들 수 있는 환경조성이 잘되어 있어요. 가마 만들 자리, 땔감 구하는 조건은 구억리가 최적지구요. 그저 한가지 바램은 제대로 된 전수자들이 제주옹기의 생명력을 이어갔으면 하는 것뿐이에요.”
 
옹기박물관 안에 있는 체험장은 근처에 있는 보성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체험 프로그램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흙과 친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궁극적으로 지역주민이 주인이 되는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찾아갔던 그날도 마을 청년들과 봉덕가마를 만들고 있다며, 며칠 뒤에 꼭 오라고 닭죽과 막걸리를 미끼로 내밀기도 했다.
 
같이 일하는 김보연 선생이 말하기를 “허은숙님은 참 쎈 사람”이라고, “제주 흙의 성질이 아주 패라워서(사나워서)… 이를테면 매를 치고 점력을 높이며 불순물을 제거하는 토림 과정을 통해 옹기로 거듭나듯이 그 흙의 성질을 닮은 사람”이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현장에서 자기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사람, 매 순간이 100% 뜨거운 사람이었다. 어쩌면 설문대할망이 너무 아끼는 손녀라, 거듭거듭 그녀의 인생에 매를 치며 생(生)의 점력을 높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유약을 바르지 않은, 제주자연을 닮은 빼어난 사람그릇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는 데까지 가 닿았다. (박진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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